2년 전 음악 플랫폼 플로(FLO)가 실시간 음원 차트를 전격 폐지한다고 했을 때 업계에선 우려하는 시선이 많았다. 실시간 차트는 음원 사재기 등 논란이 많았지만 음원 서비스 업계의 오랜 관행이기도 했다. 플로를 이끌면서 실시간 차트 폐지를 주도했던 이기영 당시 드림어스컴퍼니 대표는 "많은 사람들이 말렸다"며 "반대가 많은 일을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럼에도 이 대표는 차트방식을 다양화하고 개별화된 큐레이션을 도입하는 개편을 단행했다. 지금은 실시간 차트에 끌려가던 음원 소비 문화를 바꾸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플로를 안착시킨 이 대표는 지난 4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팬덤 플랫폼 개발사인 비마이프렌즈에 공동대표로 합류한 것이다. 한경 긱스(Geeks)가 "변화에 확신을 갖고 도전해나가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는 이 대표를 비마이프렌즈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기영 비마이프렌즈 공동대표. 그는
이기영 비마이프렌즈 공동대표. 그는 "변화에 확신을 갖고 도전해나가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T전화·FLO 만들었던 리더

"안 된다는 얘기를 계속 들어가면서 꿋꿋하게 시도하는 것 자체가 사실은 힘든 일이에요. 이 길이 맞는지 미래를 100% 확실하게 예상할 수도 없죠." 이기영 비마이프렌즈 대표는 다양한 콘텐츠 플랫폼 사업을 기획하고 이끌어본 경험에 대해 공유해달라는 요청에 이렇게 말했다.

그는 SK텔레콤의 전화 앱인 T전화 서비스를 주도한 인물이다. SK텔레콤에서 신사업 발굴과 투자를 담당하는 유니콘랩스 프로젝트리더를 맡았고, 뮤직사업TF장과 아이리버 최고운영책임자(COO)를 겸직하면서 음악 플랫폼인 플로를 기획했다. 2019년부터는 2년간 플로 운영사인 드림어스컴퍼니 대표를 역임하면서 기존 음원 시장의 관행을 깬 인물로도 유명하다.

그런 그가 지난 4월 비마이프렌즈라는 글로벌 팬덤 비즈니스 전문 스타트업에 합류했다. 설립된 지 1년여밖에 안 됐지만 최근 최근 CJ와 GS, SK그룹 계열사인 드림어스컴퍼니 등으로부터 전격적인 투자를 받으며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곳이다. 비마이프렌즈는 크리에이터가 팬들과 연결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하는 플랫폼 '비스테이지'를 내세웠다. 콘텐츠 노출부터 상품 커머스, 후원, 소통까지 팬덤 비즈니스에 필요한 도구를 제공하는 서비스다.
비마이프렌즈와 플로 운영사인 드림어스컴퍼니는 팬덤 비즈니스 영역에서 협업 중이다.
비마이프렌즈와 플로 운영사인 드림어스컴퍼니는 팬덤 비즈니스 영역에서 협업 중이다.
이 대표는 "비마이프렌즈가 하려는 일은 해외 서비스의 카피캣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서비스라 매력적이었다"고 했다. 해외 서비스를 빠르게 국내에 들여오겠다고 내세운 게 아니라 아예 한국에서 시작해 글로벌 시장을 노리는 독창적인 기획이란 얘기다.

왜 전화앱은 '블랙'이어야만 했을까

그는 어떤 서비스든 새롭게 만들어 시장에 안착시키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고 했다. T전화 서비스를 기획했던 경험을 소개했다. 이 대표는 "처음에 앱 배경을 하얗게 만들었는데 (내외부에서) 전력 소모가 있으면 안되니 전화 앱은 다 까매야 한다는 평가가 나왔다"며 "지금 돌아보면 모바일 앱의 UX 구축 과정에서 색깔을 정해두는 게 이상한 일"이라고 했다.'전화 다이얼=블랙' 이라는 당시 고정관념이었다. 그는 "지금은 삼성 다이얼도 하얀색"이라고 했다.

플로에서 인공지능(AI) 기반의 맞춤형 음악 추천 서비스를 기획했을 때도 반대에 부딪혔다. 그가 구상했던 건 실시간 차트 대신 AI를 통해 취향에 맞는 음악을 추천하는 개인화된 서비스였다. "기존 음원 서비스가 이미 많은데 똑같은 걸 하나 더 내놓는 게 어떤 큰 의미가 있겠나 싶었다"며 "그래서 취향의 영역, 즉 '롱테일'을 더 두텁게 만들고 싶다는 관점으로 접근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 때도 업계에 있는 수많은 관계자들은 이 대표에게 실패할 거라고 했다. 음원 업계 자체가 전부 실시간 차트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1위 사업자(멜론)는 변화할 이유가, 나머지 사업자들은 변화할 용기가 없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음악에서 '취향'을 발견할 수 있어야 장기적으로 음악 감상의 총량도 늘어날 것이라고 봤다. 그는 "2년 여가 지난 지금은 모두 추천 기반으로 음악을 듣는 게 자연스러워졌다"고 평가했다. 플로 운영사인 드림어스컴퍼니는 지난해 출범 3년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콘텐츠=팬비즈니스' 증명할까

이 대표는 음원 플랫폼을 운영하면서 콘텐츠 비즈니스가 곧 팬 비즈니스라는 생각에 확신을 가졌다. 음악 서비스 역시 팬덤에 의해 움직였다는 것. 단순히 음악이 좋아서 감상하려고 듣는 수요가 있지만, 한 아티스트에 대한 팬심으로 '반복 재생'을 하면서 자신의 애정을 표현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더 적극적으로 음악 서비스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표면적으로는 음악을 재생하는 행위로 나타나지만, 기본적으로는 아티스트에 대한 팬심에서 모든 게 출발한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국내외 대형 음원 플랫폼에서 방탄소년단의 음악은 총 371억회(스포티파이 258억회, 멜론 113억회) 스트리밍 됐다. 스포티파이에서 방탄소년단 페이지의 팔로워 숫자는 5000만명을 넘겼고, 방탄소년단의 곡이 포함된 청취자의 플레이리스트는 7800만개를 돌파했다.
비마이프렌즈는 방탄소년단 팬 플랫폼인 위버스를 만든 멤버들이 창업한 회사이기도 하다. 연합뉴스
비마이프렌즈는 방탄소년단 팬 플랫폼인 위버스를 만든 멤버들이 창업한 회사이기도 하다. 연합뉴스
실제로 비마이프렌즈의 창업 멤버들은 방탄소년단 팬 플랫폼인 위버스를 만든 인물들이기도 하다. 하이브에서 위버스와 위버스샵을 만들어낸 배상훈 최고운영책임자(COO)와 김준기 최고기술경영자(CTO)가 창업했고, 서우석 전 위버스컴퍼니 대표가 함께 나섰다.지난 4월 플로 서비스를 기획한 이 대표까지 회사에 합류했다.

이 대표는 비마이프렌즈를 통해 '콘텐츠=팬비즈니스'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다고 했다. "예전엔 콘텐츠 업계의 주된 고민이 '콘텐츠에 대한 비용을 어떻게 받을까'였다면, 이젠 다른 단계로 왔다"며 "콘텐츠를 만드는 것 자체가 팬덤 사업이라고 여기는 곳들이 많아졌다"고 했다.

"크리에이터, 돈 더 벌게 해줄게"

"지금 크리에이터들은 생산해내는 것에 비해 적게 법니다." K-콘텐츠가 글로벌에서 히트하는 등 산업이 크게 성장했지만 막상 크리에이터들은 실제 일하는 가치만큼 비즈니스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구글 안에서 (비즈니스를) 한다, 애플 안에서 한다'는 식으로 플랫폼에 종속되기 시작하면 기본 30%는 (수수료를) 떼어내고 시작해야 합니다. 모든 가치는 다 크리에이터가 만들었는데 길목에 서있는 사람이 30%씩 빼가는 거죠."

이 대표는 크리에이터가 직접 주인이 되는 게 비마이프렌즈가 외치는 관점의 전환이라고 강조했다. '플랫폼을 나와서 플랫폼을 구축하라'는 메시지다. "한국 역시 노란나라(카카오) 녹색나라(네이버)로 독점화돼있다"며 "비마이프렌즈가 하고 싶은 일은 크리에이터가 자신만의 플랫폼에서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했다. 크리에이터가 기존 플랫폼에 단순히 콘텐츠를 공급하는 데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크리에이터 자신이 플랫폼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미 'T1''농심 레드포스''쉘위골프' 등 다양한 크리에이터가 비스테이지를 통해 자체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플랫폼에서 영상 등 콘텐츠를 올리고 팬들과 소통하고 물건도 팔 수 있다. 수익화를 위해 기성 플랫폼 또는 채널을 거쳐야 했던 기존의 구조와는 다른 방식이다.
e스포츠팀 'T1'의 비스테이지. T1은 페이커의 소속팀으로, 전 세계적인 팬덤을 보유하고 있다.
e스포츠팀 'T1'의 비스테이지. T1은 페이커의 소속팀으로, 전 세계적인 팬덤을 보유하고 있다.
그는 그렇게 하면 지금 10을 버는 크리에이터들이 100을 벌 수 있다고 주장했다. 100을 벌면 남는 90은 재투자해 더 좋은 콘텐츠를 만들 수 있게 되는 선순환이 이뤄진다. 이 대표는 한국이 이같은 새로운 크리에이터 환경을 만들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갖췄다고 봤다. 그는 "한국이 가장 앞서있는 분야가 콘텐츠와 IT다. 한국에서 시작해 글로벌로 가져갈 수 있는 모델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늘 우상향이다"

이 대표는 "아마 이 비즈니스 모델을 1~2년 전에 얘기했다면 '그게 무슨 소리냐'라는 말을 들었을 것"이라며 "늘 (트렌드) 앞 단계에서 방향을 외치고 설득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고 했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 설명하고 사람들을 참여시키는 것에 대한 고민이다. 그는 "SKT에서도 플로에서도, 그리고 지금도 먼저 확신을 갖고 계속 얘기하고 설득해나가는 비슷한 속성의 일을 반복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힘들 때마다 '모든 안 좋은 일은 다음 좋은 일의 시작'이라는 말을 주문처럼 외운다고 했다. 비즈니스가 늘 좋을 수는 없다. 오히려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그게 계기가 돼서 다시 상승곡선을 탈 가능성이 생긴다는 얘기다. 그는 "'우리는 늘 우상향이다'라고 생각을 많이 한다"고 했다.
이기영 비마이프렌즈 공동대표. 그는
이기영 비마이프렌즈 공동대표. 그는 "모든 안 좋은 일은 좋은 일의 시작"이라고 했다.
그는 과거에 새로운 서비스를 기획하고 선보이는 과정에서 경험한 게 많다고 했다. "한 사이클, 한 사이클 해나가면서 더 잘하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일정 부분은 가설이고, 미래를 확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일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잘 가고있다'고 외치는 역할은 잘 할 수 있다"고 했다.
CJ는 왜 비마이프렌즈의 손 잡았을까

CJ가 비마이프렌즈에 투자한 건 직접 만든 콘텐츠를 활용해 수익을 거두는 '크리에이터 이코노미(창작자 경제)' 성장에 발맞춘 것이란 분석이다. CJ가 비마이프렌즈에 투자한 금액은 224억원. CJ그룹은 비마이프렌즈의 2대주주 지위를 확보하게 됐다.

비마이프렌즈 투자는 지난해 CJ가 발표한 중기비전 후속 실행의 일환이기도 하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컬처(Culture), 플랫폼(Platform), 웰니스(Wellness), 서스테이너빌러티(Sustainability) 등 4대 성장엔진 중심의 중기비전을 제시한 적 있다. 투자 및 사업협력을 통해 글로벌 팬덤 비즈니스를 본격 추진하면서 컬처와 플랫폼 분야에서 사업영역을 확대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게 됐다는 게 CJ 측 설명이다.

두 회사는 '비스테이지'를 활용한 팬덤 서비스를 공동 추진하기로 했다. CJ는 음악·영상·아티스트·DIA TV인플루언서 등 팬덤 비즈니스의 기반이 되는 IP와 네트워크를 제공하고, 비마이프렌즈는 비스테이지를 통해 콘텐츠와 멤버십 등 팬덤 서비스를 구축하는 역할을 맡는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