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규제 법안이 29년 만에 미국 상원에서 극적으로 통과됐다. 반면 보수 성향인 미 연방대법원은 공공장소에서 총기 소지 권리를 확대하는 판결을 내려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미 상원은 23일(현지시간) 본회의를 열어 총기 구매자의 신원조회를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총기규제 법안을 찬성 65 대 반대 33으로 통과시켰다. 민주당 의원 50명 전원이 찬성표를 던졌고, 공화당에서는 15명이 찬성했다.

상원 관문을 넘어선 법안은 민주당이 과반인 하원에서도 무난히 통과될 전망이다. 상하원 모두 다음주부터 2주간 휴회에 들어가기 때문에 하원은 24일 이 법안을 통과시킬 것으로 보인다고 미국 언론들은 전했다. 이후 법안은 조 바이든 대통령의 서명 과정을 거쳐 공포된다.

법안엔 21세 미만인 총기 구입자의 정신건강 상태를 관계당국이 최소 열흘간 검토하는 내용이 들어갔다. 현행 법에는 배우자나 동거자가 가정폭력 전과가 있으면 총기 구매를 제한하지만 그 적용 대상을 함께 거주하지 않는 데이트 상대로도 확대한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1993년 공격용 소총을 금지(유효기한 10년 만료)한 뒤 의회가 29년 만에 총기규제법을 마련하게 된다.

그동안 미국에서 총기규제 목소리는 꾸준히 제기됐지만 공화당과 미국총기협회(NRA) 등의 반대를 넘어서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달 뉴욕주 버펄로, 텍사스주 유밸디 총기 난사 사건 후 총기규제법 도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이날 미 연방대법원은 공공장소에서 총기 소지 권리를 확대하는 판결을 내렸다. 일반인이 집이 아닌 야외에서 권총을 소지할 수 없고 필요에 따라 휴대하면 사전에 면허를 받도록 한 뉴욕주의 법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뉴욕의 주법이 합헌이라는 하급심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이번 판결은 보수 6명, 진보 3명으로 구성된 대법관 9명의 성향에 따라 6 대 3으로 결정됐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연방헌법은 집 바깥에서 정당방위를 위해 개인이 권총을 휴대할 권리를 보호한다”며 “뉴욕주의 주법은 일상적 정당방위 필요가 있는 개인이 무기를 소지할 권리의 행사를 막아 위헌”이라고 밝혔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