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8월 14일 오후 4시11분. 미국과 캐나다 동부지역이 한순간 암흑천지로 변했다. 북미 대정전(블랙아웃) 사태의 시작이었다. 국가 기간망이 순식간에 멈춰 섰고, 도시는 아수라장이 됐다. 교통신호가 꺼지고 지하철이 멈추자 시민들은 귀가를 포기하고 노숙을 택했다. 촛불로 인한 화재가 급증하고, 일부 거리에선 약탈이 발생하기도 했다. 경제적 피해액은 60억달러에 달했고, 5500만 명이 폭염 속에서 암흑과 맞서야 했다. 전기 산업 종주국과 다름없는 미국에 이날은 악몽으로 기억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11년 9월 15일 예고 없는 정전 사태를 경험했다. 전국적 블랙아웃을 예방하기 위해 당국이 지역별로 돌아가며 전력 공급을 일시 중단한 결과였다. 지난해 7월에도 예비전력이 바닥으로 떨어지자 정부가 전국 관공서 냉방을 권역별로 중단하는 소위 ‘에어컨 자제령’을 내리기도 했다.

블랙아웃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추가로 공급할 수 있는 여유 전력을 뜻하는 전력 공급 예비율이 최근 8%대로 내려앉아 연중 최저치를 경신하면서다. 본격적인 무더위가 찾아오는 7, 8월이 되기도 전에 전력 수급에 비상이 걸린 모양새다. 올여름 폭염이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큰 데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여파 등으로 전력 수요가 빠르게 늘어날 전망이어서 불안감이 커진다. 이런 판에 올 3분기 전기요금 인상도 예고돼 있다. 각종 생활 물가가 치솟는 가운데 가계와 소상공인들은 올여름 전기료 부담에 전력 수급까지 걱정해야 할 처지다. 이런 전력난과 전기료 인상은 지난 문재인 정부의 어이없는 탈원전 정책과 함께 예고된 것이다.

블랙아웃을 예방하는 방법은 충분한 발전소를 짓거나 전력 수요를 줄이는 것뿐이다. 하지만 전력 공급을 일시에 늘리기는 어렵다. 전기 절약 노력이 필수인 이유다. 한국은 에너지 과소비 국가다. 한국의 1인당 전력 소비량은 2020년 기준 1만1082㎾h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38개국 중 8위다. OECD 평균보다 1.4배, 세계 평균보다는 3.4배 높은 수치다. 이런데도 서울 중심가 상권에서는 문을 열어둔 채 에어컨을 켠 가게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전국적 블랙아웃이란 재앙을 막는 것은 물론 무거워지는 전기료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각자가 일상의 절전법을 실천할 때다.

유병연 논설위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