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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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에 자신의 계좌가 이용돼 거액의 잔액을 '피해자 구제'에 쓰게 될 뻔 한 명의자가 소송 끝에 돈을 돌려받게 됐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부장판사 김순열)는 A씨가 금융감독원을 상대로 낸 소멸채권 환급거부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A씨는 2020년 1월 은행 직원을 가장한 보이스피싱 사기범이 '통장 거래실적을 쌓아야 낮은 금리로 대출받을 수 있다'고 하자 이에 속아 자신의 계좌번호와 비밀번호, 체크카드 정보 등을 넘겼다.

A씨의 계좌는 이후 보이스피싱 범죄에 활용돼 다른 피해자 B씨의 돈 3000여만원을 입금받는 용도로 사용됐다. 이 사실을 몰랐던 A씨는 자신이 부동산을 팔면서 받은 계약금 2500만원을 이 계좌에 넣어두기도 했다.

A씨는 자신이 넣어둔 돈 가운데 500여만원이 빠져나가자 뒤늦게 계좌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이에 A씨는 은행에 지급정지 및 피해구제를 신청했고, 은행은 해당 계좌에 대해 지급정지 조처를 했다. 지급정지 당시 계좌 잔액은 2009만원 뿐이었다.

또한 금융감독원에 채권소멸절차 개시요청도 했다. 채권소멸절차란, 해당 계좌가 보이스피싱 범죄에 연루된 사실이 밝혀지면 명의자의 예금을 사용해 피해자의 피해금 회복에 돕는 것이다. 즉, 사기피해를 입은 B씨에게 2009만원이 돌아간 것이다.

A씨는 이에 반발했다. 자신의 계좌가 보이스피싱에 연루된 사실도 몰랐을 뿐더러, 자신이 넣어둔 부동산 계약금 역시 빠져나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금감원은 "피해자금(B씨가 입금한 돈)과 A씨의 자금이 섞여 있어 객관적인 자료로 소명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의제기를 반려했다.

이에 A씨는 행정심판을 청구했지만 기각되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해당 금액은 A씨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판단했다. 계좌가 보이스피싱에 이용된 사실을 A씨가 알았다고 보기 어렵고, 이를 알지 못한 것이 A씨의 '중대한 과실'도 아니라는 설명이다.

보이스피싱 이용 계좌라는 것을 알았다면 A씨가 부동산 계약금을 해당 계좌에 입금했을 리 없고, 사기범이 은행 직원을 가장해 접근했을 때 실제 직원인지를 확인하지 않은 것은 중대 과실로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다.

특히 A씨가 받은 계약금 중 500만원은 "사기범들이 인출했을 수 있다"며 "원고 역시 피해자에 해당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덧붙였다.

오현아 기자 5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