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한 핏줄' 고려인 동포에 지원을
우크라이나 사태가 발발한 지 어느덧 4개월째에 접어들었다. 우크라이나 내 인도적 위기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고통과 피해가 극심해지는 가운데 우크라이나 출신 고려인 동포들이 전쟁을 피해 모국인 대한민국에 속속 입국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정부는 지난 3월부터 여권이나 비자가 없는 고려인 난민을 위해 비자 발급 절차를 간소화하는 등 고려인들의 한국행 문턱을 일부 낮췄다. 하지만 비용 부담이 큰 탓에 여전히 많은 고려인이 한국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고려인은 우리에게 아픈 손가락과도 같은 존재다. 19세기부터 광복 시기까지 러시아 및 구소련 지역으로 이주한 동포들로, 일제강점기 국권 회복을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 후손이 많다. 구소련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이주한 17만여 명의 고려인은 나라 없는 약소민족의 비애를 온몸으로 느끼며 오랜 세월을 버텨냈다.

우크라이나 사태 발발 후 한국에 입국한 우크라이나인은 1600여 명에 이르고, 이들 중 고려인은 800여 명으로 추정된다고 하나 제대로 된 공식 통계는 없는 실정이다. 대표적 고려인 밀집 거주지역인 광주 광산구 고려인마을에는 400여 명의 고려인 동포가 정착했다. 대부분이 노인과 여성, 어린이들이다. 우크라이나에서 척추 수술 예정이던 60대 여성 고려인 난민 안에브로시아 씨는 수술도 받지 못한 채 부모, 딸과 함께 한국에 입국했다. 20세 딸인 박스베타 씨는 전쟁 중 미사일 폭격으로 청력을 상실했다. 갑작스럽게 맨몸으로 떠나온 고려인들의 생계는 막막할 따름이다. 대한적십자사는 이들을 돕기 위해 국내 고려인 지원 단체와 협약을 맺고 10억원 규모의 생계비, 생필품, 의료 지원에 나서고 있다.

2000년대 중반 필자는 서울대병원 의료봉사단을 구성해 러시아의 대표적 고려인 거주지역인 연해주 고려인마을에 몇 차례 의료봉사를 다녀온 적이 있다. 그렇게 인연이 닿았던 고려인 동포들이 전쟁의 참화로 고통받는 현실을 보고 있노라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전쟁을 피해 한국에 왔지만, 생활이 힘들다.” 폴란드로 피란 갔다가 단기 비자로 한국에 들어온 60대 여성 김타마라 씨는 경제활동이 어려워 생활비를 충당할 수 없다고 토로한다. 이국땅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다가 이산의 아픔을 겪은 고려인 동포들에게 역사의 비극이 반복돼선 안 된다. 이들이 고국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 정책이 마련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