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후손 없는 애국선열들
서울 강북구 수유리의 애국선열 및 광복군 합동묘역에 특별한 무덤이 하나 있다. 꽃다운 나이에 순국해 돌봐줄 후손이 없는 ‘한국광복군 무후선열(無後先烈) 17위 합동묘’. 이곳엔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으로 중국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하거나 순국한 선열의 유해가 합장돼 있다. 지청천 광복군 총사령관이 1946년 입국하면서 모셔왔다.

이 중에는 광복 직전에 순국한 청년 김순근의 유해도 있다. 일제의 횡포가 극에 달한 1945년, 19세로 광복군에 입대한 김순근은 중국에서 동지들을 비밀리에 모으다 일본 경찰에 발각돼 투옥됐다. 그는 모진 고문을 견디다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자결을 택했다. 조금만 더 버티면 광복을 맞을 수 있었던 20세 젊은이의 안타까운 최후였다.

이외에 독립운동 중 일본군에 체포돼 1945년 8월 순국한 김찬원과 1943년 전사한 문학준, 1942년 총살된 백정현, 한미합작특수훈련(OSS훈련)에 참여한 동방석 등의 유해가 안장돼 있다. 중국 산시성의 ‘태항산 전투’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한 이도 많다.

이 합동묘는 1967년 광복군동지회가 조성했다. 당시에는 6·25 전사자 등을 안장하기 위한 서울현충원이 유일한 국립묘지여서 광복군 선열 유해를 수유리 합동묘역에 모실 수밖에 없었다. 이후 2006년 추석날 뜻있는 등산객들이 모여 선열들을 기렸고, 2017년부터 무후광복군기념사업회 이름으로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몇 년 전부터는 “국립묘지로 이장하자”는 주장이 대두됐다.

마침 국가보훈처가 이들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이장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시기는 오는 8·15 광복절이나 광복군 창건기념일인 9월 17일로 잡고 있다. 10명 이상의 애국지사 유해가 한 번에 국립묘지로 이장되는 것은 광복 후 처음이다.

여기에 묻힌 이들은 대부분 20~28세미혼이다. 조국을 위해 청춘을 불사르고, 한 줌 흙으로 돌아와 묻힌 무후선열. 이들이 국립묘지로 옮겨가기까지 기다린 세월은 55년, 그 오랜 시간을 묵묵히 함께해준 묘비 뒷면의 추모시가 오늘따라 더욱 애절하게 다가온다.

‘비바람도 찼어라./ 나라 잃은 나그네야./ 바친 길 비록 광복군이었으나/ 가시밭길 더욱 한이었다.// 순국하고도 못 잊었을/ 조국이여 꽃동산에/ 뼈나마 여기 묻히었으니/ 동지들아 편히 잠드시라.’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