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30일 스페인 마드리드 전시컨벤션센터(IFEMA)에서 페트르 피알라 체코 총리(왼쪽 사진),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오른쪽 사진)와 정상회담을 했다. 체코와는 원전·전기차 배터리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고, 영국과는 새로운 관계 설정을 위한 ‘한·영 프레임워크’를 채택했다.  /마드리드=김범준  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30일 스페인 마드리드 전시컨벤션센터(IFEMA)에서 페트르 피알라 체코 총리(왼쪽 사진),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오른쪽 사진)와 정상회담을 했다. 체코와는 원전·전기차 배터리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고, 영국과는 새로운 관계 설정을 위한 ‘한·영 프레임워크’를 채택했다. /마드리드=김범준 기자
29일(현지시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가 열린 스페인 마드리드 전시컨벤션센터(IFEMA). 본회의 개막 전 잠시 짬이 나자 윤석열 대통령은 회의장을 돌며 정상들과 인사를 나눴다. 약 15분간 15개국 정상을 만났다. “짧은 시간이나마 친밀도를 높여야 다음에 만났을 때 경제 협력에 속도를 낼 수 있다는 게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참모들이 전했다.

윤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의를 준비하면서 “관련된 모든 자료를 메모 형태로 만들어 주기만 하면 국익을 위해 뭐든 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 22일 경남 창원에서 연 원자력발전 협력업체와의 간담회에선 “원전 세일즈를 위해 백방으로 뛰겠다”고 했다.

원전·방산 세일즈 외교 ‘총력’

윤 대통령은 NATO 정상회의가 열린 사흘간 각국 정상을 만날 때마다 원전과 방위산업, 반도체, 배터리 등 국내 주요 수출산업을 위한 ‘세일즈 외교’를 펼쳤다. 대화 말미엔 어김없이 ‘2030 부산엑스포’ 유치를 위해 ‘한 표’를 부탁했다.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브리핑에서 한국 원전을 홍보하는 책자를 기자들에게 보여주며 “윤 대통령이 이 책자를 폴란드 대통령에게 전달하면서 한국 원전의 안전성과 우수성을 설명했다”며 “대통령이 세일즈 외교 최전선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30일 IFEMA에서 열린 페트르 피알라 체코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도 한국 원전의 경쟁력을 거듭 강조했다. 원전 4기를 건설할 계획인 체코는 이 중 1기(1200㎿ 이하급)를 우선 발주할 예정이다. 오는 11월 입찰제안서를 받는데, 총사업비가 8조원에 달한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회담에서 “체코가 올 3월 입찰을 시작한 두코바니 신규 원전에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우리 기업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관심과 지원을 당부한다”고 말했다. 피알라 총리는 “양국 간 호혜적 협력이 전기차 배터리, 수소 등 미래 산업 분야로 확대되기를 희망한다”고 답했다.

윤 대통령은 피알라 총리에게 전기차 배터리 공급망 구축을 위한 협력도 요청했다. 체코에 생산기지를 보유한 현대자동차를 지원하기 위한 목적이다. 현대차 체코 공장은 코나EV 등의 차량을 생산해 유럽 시장 전역에 공급하는 생산기지다.

윤 대통령은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도 양국 원전 협력을 제안했다. 양국 정상은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이후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기 위한 ‘한·영 프레임워크’를 채택했다. 한반도 및 인도·태평양 지역 협력 증진, 보건 및 기후 변화 공조 강화 등 27개 사항이 담겼다.

윤 대통령은 앞서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도 만나 리튬 니켈 코발트 등 핵심 광물의 공급망 협력을 구체화하기로 했다. 일정 문제로 미뤄진 옌스 스톨텐베르그 NATO 사무총장과의 면담도 이날 성사됐다. 윤 대통령과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한·NATO 개별 파트너십의 개정과 주NATO대표부 개설 문제 등을 논의했다.

“폴란드와 방산 협력 심도 있게 논의”

윤 대통령은 NATO 정상회의 기간에 국내 기업들이 보유한 ‘초격차’ 첨단기술이 경제안보의 지렛대가 되고 있는 외교 현장을 목도하고 감명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는 “한국 원전이 선도적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며 “한국 원전도 옵션 중 하나로 고려하고 있다”고 먼저 얘기할 정도였다.

국가안보실 핵심 관계자는 “반도체, 배터리, 원자력 등 세 가지 분야에선 양자 회담에 응했던 거의 모든 나라가 우리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협력을 타진하고 후속 회담을 제안했다”고 귀띔했다.

정부는 윤 대통령의 세일즈 외교가 하나둘 결실을 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 수석은 28일 열린 폴란드와의 정상회담과 관련해 “방산 협력을 심도 있게 논의했다”며 “정상 세일즈 외교의 첫 번째 성과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폴란드 정부 관계자들은 최근 한국을 방문해 FA-50 전투기, K-2 전차, K-9 자주포 등 한국 방산 제품을 실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수석은 “5년 동안 세계 3~4위 방산대국 진입을 목표로 적극적인 수주전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한국의 방산 수출은 작년 말 기준 세계 10위권이다.

마드리드=좌동욱/김인엽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