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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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당근마켓에서 날아 온 알람을 확인하다 깜짝 놀랐다. 테일러메이드의 신형 드라이버인 ‘스텔스’가 중고 물품으로 올라와 있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사고 싶어도 물건이 없어서 못 사던 베스트셀러다. 고공 행진을 거듭하던 골프 산업에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공은 안 맞고 그린피는 너무 비싸고…골프채 파는 골린이들

1일 대형 백화점의 골프 담당 바이어는 “골프채 수요의 상승세가 확실히 꺾였다”며 “여성용 젝시오 아이언클럽이나 타이틀리스트 퍼터 등 몇몇 인기 제품을 제외하면 새로 골프채를 사려는 이들이 줄고 있다”고 말했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5, 6월에 마제스티 신제품을 독점 판매한 덕분에 월별 매출은 상승세”라면서도 “신제품 출시 이벤트를 빼면 전년 대비 소폭 증가한 정도”라고 말했다.

그나마 백화점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골프존마켓 등 골프용품 전문 유통사들은 재고 부담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골프업계 관계자는 “골프존마켓의 상반기 말 재고 자산이 수백억 원 규모”라며 “AK골프는 하반기 매출 목표를 줄이고 수익성 위주로 긴급히 경영 전략을 변경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골프 호황 '종말의 징후'…"중고채가 쏟아지고 있다"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신규 채 수요의 감소와 중고 채 시장의 활황은 밀접히 연결돼 있다. 골프 입문자들이 고가의 신형을 샀다가 효용성이 떨어지자 밑지더라도 중고로 거래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한 골프샵 프로는 “가상화폐 하락 등으로 지갑은 얇아지는데 골프장 그린피 가격은 주말에 30만원을 넘는 등 떨어질 줄 모르니 골프장에 나갈 기회가 갈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골린이로 불리는 2030세대들이 해외여행 등 대체재로 빠르게 빠져나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늘의 별 따기로 불리던 골프장 부킹에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대중제 골프장의 경우 오후 시간대이긴 하지만 주말 부킹 중 남는 시간대가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한 골프장 업계 관계자는 “7월이 폭염 비수기이고 최근 장마가 길어져서 나타나는 일시적인 현상일 수도 있다”며 “다만, 해외여행이 본격화되면 골프 초보자들이 대거 빠질 것에 대비해 경영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도권에 있는 명문 대중제로 불리는 이 골프장은 그린피를 초고가로 유지하되, 팀을 적게 받아 사실상 회원제급 대우를 해주는 쪽으로 전략을 바꿨다. 불경기에 대비해 법인카드 고객을 미리 잡아 놓기 위해서다.

'착한 골프장' 만들려는 정부 규제에 '촉각'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선 골프 산업에 예고치 않은 빙하기가 찾아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가장 큰 변수는 정부 규제다. 지난해 11월 국민권익위원회 이정희 부위원장은 ‘대중골프장 운영의 관리·감독 강화 방안’을 마련해 문화체육관광부와 공정거래위원회에 권고한 바 있다. 소위 ‘착한 골프장’을 만들라는 취지다.

현재 문체부가 검토 중인 관리·감독 방안의 핵심은 두 가지다. 그린피를 10만원대(평일 기준)로 떨어뜨리고, 이에 따르는 대중제 골프장에만 기존 세제 혜택을 주겠다는 것이 첫 번째다. 정부는 골프 대중화를 위해 1999년부터 대중제 골프장에 각종 세제 혜택을 주고 있다. 골프장 이용요금에서 개별소비세 2만1120원을 면제하고, 골프장 부지 등 각종 자산에 매기는 재산세도 0.2%로 회원제의 4%에 비해 20분의 1 수준이다.

문체부가 평일 그린피를 얼마로 할지, 정부 정책에 따르지 않는 대중제 골프장에 부과할 세율을 얼마로 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일각에선 보유세 명목으로 연간 20억원가량의 세금이 부과될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잘 되는 골프장의 연간 EBITDA(감가상각 전 영업이익)가 통상 100억원 안팎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과세 부담이 만만치 않다.

문체부는 골프장 운영사가 특정 고객을 위해 미리 경기 시간대를 선점하는 소위 ‘선예약’ 관행에도 손을 대겠다고 벼르고 있다. 대중제인 만큼 누구나 손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부킹 환경을 개선하라는 취지다. 골프업계 관계자는 “골프장 운영 기업이 마케팅 등 각종 명목으로 미리 황금 시간대를 빼놓는 행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겠다는 것”이라며 “대중제 골프장이 생활체육시설로 지정돼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심각한 사유재산권 침해라고 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몇몇 골프장들은 자칫 정부의 타깃이 될 것을 우려해 블록으로 잡아뒀던 부킹 시간대를 모두 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정부가 권익위의 권고를 그대로 이행할지는 미지수다. 만일 정부의 ‘착한 골프장’ 정책이 강행된다면 골프업계는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한번 대중제로 전환한 골프장이 회원제로 다시 돌아가기도 어렵다”며 “세금을 내든가 그린피를 내리든가 선택을 해야 한다는 얘기인데 어느 쪽이든 수익성에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회원제 골프장을 사들여 대중제로 전환해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골프존카운티만 해도 자칫 상장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

골프장 M&A 시장에 끼어 있는 거품이 확 사라질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IB업계 관계자는 “포스코가 계열사를 통해 인수한 잭니클라우스CC는 홀당 160억원이라고 하지만 회원제 골프장 인수여서 통상적인 거래 기준으로 삼기는 어렵다”며 “BGF그룹이 지난해 센트로이드PE에 매각한 사우스스프링스가 그나마 기준이 될 수 있을 텐데 홀당 거래액은 대략 6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실제 거래액은 홀당 95억원이었지만 여기엔 9홀 규모의 골프장 건설 예정 부지와 골프장 인근에 있는 물류 단지 부지까지 포함돼 있다는 지적이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