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 대만 TSMC를 추격하기 위해 승부수를 던졌다. 삼성전자는 그제 세계 최초로 3㎚(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파운드리 공정 양산을 시작했다. 메모리 반도체에 이어 파운드리 시장을 제패하기 위한 초격차 전략을 가동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3나노 공정은 반도체 제조 공정 가운데 가장 앞선 기술이다. 회로 선폭을 미세화할수록 전력 소모가 줄고 처리 속도가 빨라지기 때문에 초미세공정 경쟁이 뜨겁다. 삼성전자는 ‘게이트 올 어라운드(GAA)’라는 혁신 기술을 적용해 반도체 크기와 전력 소모량을 줄여 성능을 크게 높였다고 설명했다. TSMC가 올 하반기에나 3나노 제품을 양산하고 GAA 기술은 2025년 2나노 공정에 채택할 계획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삼성전자의 기술 개발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실감할 수 있다. 한발 앞서 신제품을 내놓지 않으면 격차를 좁히지 못할 것이라는 위기의식과 초조함도 느껴진다. 올 1분기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TSMC 53.6%, 삼성전자 16.3%로 작년보다 차이가 더 벌어졌다.

관건은 수율(불량 없는 완성품 비율)이다. 제아무리 뛰어난 신기술 공정이라도 수율이 떨어지면 무용지물이다. 삼성이 4나노 공정 수율 저하로 TSMC에 일감을 잇달아 빼앗긴 게 불과 몇 달 전이다. 3나노 양산 발표 당일은 물론 다음날인 어제도 삼성전자 주가가 하락한 것은 시장의 평가가 얼마나 냉정한지 보여준다. 3나노 성공 여부는 수주 성과 등 실적으로 보여줄 수밖에 없다. 그래야 ‘실체 없는 숫자 마케팅’ ‘TSMC 5나노 공정과 비슷한 수준’이라는 대만 언론의 조롱도 잠재울 수 있다.

삼성전자는 특유의 도전정신과 파괴적 혁신으로 메모리 반도체 신화를 써왔다. ‘2030년 시스템 반도체 세계 1위’ 목표를 달성하려면 파운드리에서도 ‘1등 삼성’ 정신과 ‘초격차 DNA’를 발휘해야 한다. 반도체에 미래 먹거리와 국가 안위가 달린 만큼 정부는 물론 정치권도 당리당략을 떠나 총력 지원해야 한다. 경쟁국인 미국 중국 대만은 국가와 의회, 기업이 한 몸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여당의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특별위원회’에 야당도 참여해 규제개혁·세액공제·인력 양성 등 할 수 있는 모든 지원 방안을 내놔야 한다. 피 말리는 기술 전쟁에서 잠깐 졸면 바로 뒤처지고 한 번 낙오하면 따라잡기 힘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