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부동산 투기꾼은 조선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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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의 조선책
조선은 멀고도 가까운 과거다. 조선 왕조는 불과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이 땅에 서 있었지만 고루한 유교 국가라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이런 통념에서 벗어나 조선의 다양한 실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 잇달아 출간됐다.
《우리는 투기의 민족입니다》(이한 지음, 위즈덤하우스)는 조선 사람들이 부를 축적하는 수단과 방법을 다룬 책이다. 조선시대에는 엄격한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질서 아래 돈을 천시했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뒤집는다. ‘쩐내 나게 벌어 부내 나게 살았던 500년 전 조선 개미들의 인생 역전 분투기’다. 조선 사람들의 재테크 수단은 부동산 투기, 매점매석, 인삼 밀수 등을 넘나든다.
오늘날 독자들에게 시대를 초월해 공감을 자아내는 대목이 적지 않다. 예컨대 조선 사람들에게도 ‘내집 마련’은 인생의 목표였다. 그중에서도 ‘한양 자가(자기집)’ 마련이었다. 교통과 통신에 제약이 심한 시대였으니 정치·문화 중심지 한양에 대한 선호 현상은 더했다. 《목민심서》를 쓴 청백리 정약용조차 아들들에게 “한양에서 10리 안에 살게 하겠다”고 했을 정도다.
신분제 조선에서는 심지어 양반이 상민의 한양 집을 빼앗는 ‘여가탈입’도 횡행했다. 조정은 이를 근절하기 위해 여가탈입을 했다 걸리면 관직을 박탈하는 건 물론이고 과거 급제 자체를 취소하는 초강수를 뒀다. 그러자 가난한 양반이 셋집을 구하기가 까다로워졌다. 괜히 오해라도 샀다가는 인생이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정부의 부동산 정책 여파로 실수요자들이 피해를 본 셈이다. 이처럼 조선시대 투자와 투기에 대한 얘기는 지금의 독자들에게 묘한 동질감을 준다.
《모던철도》(김지환 지음, 책과함께)는 근대화의 견인차이자 상징인 ‘철도’를 렌즈로 삼아 식민지 조선의 풍경을 전한다. 일제강점기 조선에 철도는 양가적 존재였다. ‘양반이라 해도 기다려주지 않는’ 기차는 근대화와 자주독립을 위한 필수 수단이었다. 동시에 일제가 한반도와 그 북쪽을 침략하고 수탈하기 위한 지름길 역할도 했다. 조선땅에 처음 등장한 기차를 향해 민초들이 돌을 던지고 철도역을 습격하는 ‘반철도운동’을 벌인 건 단순히 신문물을 향한 어리석은 공포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총으로 쏴 죽였던 안중근 의사, 서울역에서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에게 폭탄을 던진 강우규 의사 등 기차역은 식민지 조선의 치열한 항일운동 현장이기도 했다. 책은 당시 책, 잡지, 신문기사, 편지, 보고서 등 다양한 사료들을 철로처럼 잇는다. 독자들은 이 길을 따라 근대의 풍경 속으로 빠져들 수 있다.
《1만1천 권의 조선》(김인숙 지음, 은행나무)은 소설가 김인숙이 한국에 관한 서양 고서 46권을 살펴보고 쓴 책이다. 1만1000여 권의 한국학 자료가 소장된 명지대 LG한국학자료관에 초대된 게 책을 쓴 계기였다. 저자는 약 3년간 고서의 숲을 거닐며 이 책을 준비했다. 영국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오래된 조선》, 헨드릭 하멜의 《하멜 표류기》 등을 통해 서양 이방인들이 조선을 어떻게 직시하거나 오해했는지 이야기한다. 일반인들이 쉽게 접하기 힘든 고서 자체의 물성도 흥미롭다. 120여 장에 가까운 실제 고서 사진을 직접 촬영해 수록했다. 수백 년의 세월을 품은 표지, 책이 귀하던 시절 정성껏 금박을 입히고 공들여 책장을 엮은 실, 활자 대신 사람의 손이 새긴 글씨, 사랑하는 이에게 선물하기 위해 면지에 적어둔 짧은 편지 등을 감상할 수 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우리는 투기의 민족입니다》(이한 지음, 위즈덤하우스)는 조선 사람들이 부를 축적하는 수단과 방법을 다룬 책이다. 조선시대에는 엄격한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질서 아래 돈을 천시했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뒤집는다. ‘쩐내 나게 벌어 부내 나게 살았던 500년 전 조선 개미들의 인생 역전 분투기’다. 조선 사람들의 재테크 수단은 부동산 투기, 매점매석, 인삼 밀수 등을 넘나든다.
오늘날 독자들에게 시대를 초월해 공감을 자아내는 대목이 적지 않다. 예컨대 조선 사람들에게도 ‘내집 마련’은 인생의 목표였다. 그중에서도 ‘한양 자가(자기집)’ 마련이었다. 교통과 통신에 제약이 심한 시대였으니 정치·문화 중심지 한양에 대한 선호 현상은 더했다. 《목민심서》를 쓴 청백리 정약용조차 아들들에게 “한양에서 10리 안에 살게 하겠다”고 했을 정도다.
신분제 조선에서는 심지어 양반이 상민의 한양 집을 빼앗는 ‘여가탈입’도 횡행했다. 조정은 이를 근절하기 위해 여가탈입을 했다 걸리면 관직을 박탈하는 건 물론이고 과거 급제 자체를 취소하는 초강수를 뒀다. 그러자 가난한 양반이 셋집을 구하기가 까다로워졌다. 괜히 오해라도 샀다가는 인생이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정부의 부동산 정책 여파로 실수요자들이 피해를 본 셈이다. 이처럼 조선시대 투자와 투기에 대한 얘기는 지금의 독자들에게 묘한 동질감을 준다.
《모던철도》(김지환 지음, 책과함께)는 근대화의 견인차이자 상징인 ‘철도’를 렌즈로 삼아 식민지 조선의 풍경을 전한다. 일제강점기 조선에 철도는 양가적 존재였다. ‘양반이라 해도 기다려주지 않는’ 기차는 근대화와 자주독립을 위한 필수 수단이었다. 동시에 일제가 한반도와 그 북쪽을 침략하고 수탈하기 위한 지름길 역할도 했다. 조선땅에 처음 등장한 기차를 향해 민초들이 돌을 던지고 철도역을 습격하는 ‘반철도운동’을 벌인 건 단순히 신문물을 향한 어리석은 공포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총으로 쏴 죽였던 안중근 의사, 서울역에서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에게 폭탄을 던진 강우규 의사 등 기차역은 식민지 조선의 치열한 항일운동 현장이기도 했다. 책은 당시 책, 잡지, 신문기사, 편지, 보고서 등 다양한 사료들을 철로처럼 잇는다. 독자들은 이 길을 따라 근대의 풍경 속으로 빠져들 수 있다.
《1만1천 권의 조선》(김인숙 지음, 은행나무)은 소설가 김인숙이 한국에 관한 서양 고서 46권을 살펴보고 쓴 책이다. 1만1000여 권의 한국학 자료가 소장된 명지대 LG한국학자료관에 초대된 게 책을 쓴 계기였다. 저자는 약 3년간 고서의 숲을 거닐며 이 책을 준비했다. 영국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오래된 조선》, 헨드릭 하멜의 《하멜 표류기》 등을 통해 서양 이방인들이 조선을 어떻게 직시하거나 오해했는지 이야기한다. 일반인들이 쉽게 접하기 힘든 고서 자체의 물성도 흥미롭다. 120여 장에 가까운 실제 고서 사진을 직접 촬영해 수록했다. 수백 년의 세월을 품은 표지, 책이 귀하던 시절 정성껏 금박을 입히고 공들여 책장을 엮은 실, 활자 대신 사람의 손이 새긴 글씨, 사랑하는 이에게 선물하기 위해 면지에 적어둔 짧은 편지 등을 감상할 수 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