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히 플로히 지음
허승철 옮김 / 삼인
463쪽|2만4000원
美-소련 사이 벌어진 '쿠바 미사일 위기'
냉철한 '수 싸움'의 승리로 기억되지만
운과 지도자의 두려움이 핵전쟁 막아
"요즘 시대, 핵무기에 둔감해졌다" 비판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미국과 소련 지도부는 오판을 거듭했다. 전투기와 함선, 잠수함이 대치하던 현장은 무질서했다. 몇 번의 운이 작용하지 않았더라면 세계는 핵전쟁에 돌입했을지 모른다. 《핵전쟁의 위기》가 전하는 쿠바 미사일 위기의 실상이다.
저자는 세르히 플로히 미국 하버드대 역사학과 교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역사에 정통한 세계적 석학이다. 지난해 미국에서 출간돼 주요 언론들로부터 호평받았다. 미국뿐 아니라 소련 자료까지 철저히 조사해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재현했다.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이야기를 긴박하게 풀어낸다. 우크라이나 주재 한국대사를 지낸 허승철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교수의 깔끔한 번역도 읽는 맛을 더한다.
케네디 정권에서 국방장관을 지낸 로버트 맥나마라는 1992년 쿠바 미사일 위기를 돌아보는 학술대회에 참가했다가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피델 카스트로를 포함해 당시 위기에 관여한 미국, 쿠바, 소련 인사들이 모두 모여 있는 자리였다. 맥나마라는 1962년 당시 소련이 4만3000명의 병력을 쿠바에 배치했었다는 얘기를 그때 처음 들었다. 미국이 예상한 1만 명 미만보다 네 배나 많았다. 핵탄두가 장착된 9기의 단거리 미사일이 설치돼 있었다는 사실도 이때 알게 됐다. 플로리다까지는 닿지 않았지만 쿠바를 침공하는 미군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었다.
맥나마라는 한 기자에게 이렇게 소감을 말했다. “정말 무서운 일입니다. 미국이 쿠바를 공격했거나 소련이 미사일을 철수하지 않았다면 핵전쟁이 터졌을 확률이 99%였다는 의미거든요.”
핵전쟁을 아슬아슬하게 피한 건 이때만이 아니다. 10월 27일 밤이었다. 버뮤다 앞바다에서 수면 위로 올라온 소련 잠수함 ‘B-59’가 미 해군 구축함에 발견됐다. 갑자기 날아온 해군 항공기가 조명탄을 터뜨렸다. 이를 공격으로 착각한 B-59는 긴급 잠수해 10킬로톤의 TNT 폭발력을 지닌 핵탄두 어뢰를 발사하려 했다. 다행히 구축함 코니호가 즉각 조명등으로 사과 메시지를 보내 오해를 풀었다.
여기서도 운이 작용했다. 함교에 올라와 있던 통신장교의 전등이 해치에 걸려 얼른 잠수함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것. 통로가 막힌 사령관 바실리 아르히포프는 밖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고 덕분에 미군이 보낸 사과 메시지를 볼 수 있었다.
몇 시간 전에는 모스크바의 명령을 무시하고 소련의 지대공 미사일 포대가 쿠바 상공을 날던 U2 정찰기를 격추했다. 섬에 있던 소련군은 미국의 쿠바 침공이 임박했다고 보고 아주 예민해진 상태였다. 양국 지도부는 현장 통제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게다가 케네디와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 주변 매파들은 강경 대응을 주문했다. 이쯤 되면 전쟁이 안 일어나는 게 이상할 지경이었다.
전쟁을 막은 건 ‘두려움’이었다. 두 지도자 모두 핵전쟁으로 가면 수천만 명의 무고한 사람이 죽을 거라는 걸 알았다. 제2차 세계대전의 기억은 여전했다. 1954년 미국의 ‘캐슬 브라보’ 실험, 1961년 소련의 ‘차르 봄바’ 실험을 보면서 핵폭탄이 얼마나 파괴적인지도 똑똑히 알고 있었다. 통제력을 잃고 있다는 자각은 역설적으로 두 지도자 간 합의를 재촉했다.
책은 우리 세대가 핵전쟁에 대한 두려움을 잃어버린 것 아니냐고 묻는다. 2019년 미국은 소련과 1987년 체결했던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을 폐기했다. 러시아와 중국도 힘을 자만하며 벼랑 끝 전술을 꺼내 들고 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냉전 초기에 체득한 핵무기에 대한 두려움이 둔감해진 탓에 우리는 냉전시대 때보다 더 위험하고 더 예측할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는 과거의 교훈을 잊어버렸다. 작금의 핵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그 교훈을 다시 배워야 한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