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레미콘운송노동자 생존권사수 결의대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한경DB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레미콘운송노동자 생존권사수 결의대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한경DB
수도권 공사 현장 곳곳이 멈춰서기 시작했다. 레미콘 운송업자들이 운송 거부라는 집단행동에 나선 여파다.

2일 수도권 한 공사 현장 관계자는 "이제 공사에 속도를 내나 싶었는데 열흘 만에 또 멈췄다"며 "파업을 하려면 한 번에 하지, 시차를 두니 공사만 못 하게 됐다"고 토로했다. 그에 따르면 이 공사 현장은 화물연대 파업 여파에 한차례 홍역을 앓았다. 최근 시멘트 공급이 정상화하며 건설에 속도를 높이려던 차에 재차 레미콘운송노동조합(운송노조) 파업 직격탄을 맞았다.

그는 "배관이나 전선, 창호 같은 대체 작업은 화물연대 파업 때 다 했다"며 "이제 골조작업을 못 하면 꼼짝없이 셧다운이다. 공사 기간을 맞추지 못해 지체상금(예정보다 공사가 늦어져 발주처에 내는 벌금)까지 물게 생겼다"고 말했다.

수도권 차주 중 90%가 속한 레미콘운송노동조합(운송노조)은 지난 1일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집회를 열고 집단 운송 거부에 돌입했다. 현재 회당 5만6000원인 운송비를 7만1000원으로 1만5000원(약 27%) 인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더해 차량 운행에 드는 요소수 비용 전액(월 6만원 내외)을 레미콘 제조사가 부담하고 △명절 상여금 100만원 △근로 시간 면제수당 100만원 △성과금 1인당 100만원(연 2회) 지급도 조건으로 내걸었다.
콘크리트 타설을 기다리는 한 건설현장 모습. 사진=연합뉴스
콘크리트 타설을 기다리는 한 건설현장 모습. 사진=연합뉴스
레미콘 업계는 기존 5% 인상에서 9% 인상까지 양보했지만, 그 이상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레미콘 제조사 관계자는 "운송사업자들은 코로나19로 소상공인 재난지원금까지 받은 개인사업자"라며 "개인사업자들이 모여 불법 집단행동을 하면서 노동자의 정당한 파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지난해 5만6000원으로 인상한 운송비를 7만1000원으로 올리라는데, 그럴 여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미 많은 레미콘 운송업자들의 수입을 더 늘려줄 만큼 업계 형편이 넉넉하지 않다는 것이다.

레미콘 차량은 보통 하루 3~5회 운송한다. 그는 "유류비는 레미콘 제조사가 내주니 지금도 하루 30만원 정도 벌고 있을 것"이라며 "요구를 다 들어주면 보조 수당을 포함해 월수입이 1000만원은 우습게 넘을 텐데, 마진율이 3%도 되지 않는 레미콘 업체들에 할 요구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서울 풍납동 삼표풍납공장에 운전자 없는 레미콘 차량들이 멈춰서 있다. 사진=한경DB
서울 풍납동 삼표풍납공장에 운전자 없는 레미콘 차량들이 멈춰서 있다. 사진=한경DB
건설업계는 운송노조와 레미콘 업계의 입장 차이가 큰 탓에 당분간 공사 현장에서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어느 정도 물량을 비축한 대형 건설사는 그나마 낫지만, 중소형 건설사 현장은 언제 멈춰서도 이상하지 않다는 평가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비축분이 있어 일정 기간은 버틸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파업이 장기화하면 대체할 작업이 없어 공사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대부분 건설 현장이 화물연대 파업과 맞물려 대체 작업을 하고 콘크리트 타설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어 "중소형 건설사들의 피해가 클 전망"이라며 "레미콘을 구하지 못해 멈춰선 현장이 많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장기 공급계약을 맺지 않은 곳들은 공사가 늦어질수록 원자잿값 인상 압박을 받고, 여기에 지체상금까지 겹치면 심각한 타격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