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제공 : 김봉수님>
<사진 제공 : 서한수님>

※칼럼 제목으로 적은 “唐津別莊美人梅(당진별장미인매)”는 정식 제목을 편의상 약칭한 것입니다. 오늘 살펴볼 아래 시는 매우 고난도의 작품이기 때문에, 원시와 번역시 및 주석을 상호 참조하기에 편하도록 하기 위하여, 매구마다 원문자로 구수(句數)를 표시하였습니다. [번역노트]를 제대로 감상하시려면 최소한 [주석] ⑤, ⑥, ⑦, ⑧의 내용은 반드시 미리 숙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唐津別莊予不在時靑齊兄見訪植數株梅樹其品種名美人梅今日來賞有謝惠作以簡之(당진별장여부재시청제형견방식수주매수기품종명미인매금일래상유사혜작이간지)

李永朱(이영주)

①眼疑美樹佇迎吾(안의미수저영오)
②賓訪空莊暗植渠(빈방공장암식거)
③或憫如鰥生燥槁(혹민여환생조고)
④以希結伴共居諸(이희결반공거저)
⑤輞川睛點圖方活(망천정점도방활)
⑥和靖心開興自餘(화정심개흥자여)
⑦惠顧助營三徑院(혜고조영삼경원)
⑧謝衷只寄八行書(사충지기팔항서)

[주석]
唐津別莊(당진별장) : <시인의> 당진에 있는 별장. / 予不在時(여부재시) : 내가 있지 않을 때. / 靑齊兄(청제형) : 청제 형. 청제(靑齊) 김봉수(金鳳洙) 선생을 친근하게 칭한 말이다. / 見訪(견방) : 방문을 받다. 시인 입장에서는 방문을 받은 것이지만 청제 선생 입장에서는 방문을 한 것이므로 ‘방문하여’로 번역해도 무방하다. / 植數株梅樹(식수주매수) : 몇 그루의 매화나무를 심다. / 其品種名美人梅(기품종명미인매) : 그 품종의 이름이 미인매이다. / 今日來賞(금일래상) : 오늘 와서 감상하다. / 有謝惠作(유사혜작) : ‘謝惠’가 선물을 받은 데 대하여 감사를 드린다는 뜻이므로 “有謝惠作”은 ‘선물에 감사하는 시작(詩作)이 있어’, 곧 ‘선물에 감사하는 시를 짓게 되어’로 번역하면 무난하다. / 以簡之(이간지) : <시를> 그에게 편지로 보내다. ‘以’ 뒤에 ‘詩(시)’자가 생략된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①眼疑(안의) : 눈이 의심스럽다, 보고 의아해 하다. / 美樹(미수) : 아름다운 나무. 미목(美木). 이 시에서는 매화나무를 지칭한다. / 佇(저) : 우두커니, 우두커니 서다. / 迎吾(영오) : 나를 맞다, 나를 맞이하다.
②賓訪空莊(빈방공장) : 손님이 <주인이 없어> 비어 있는 집[별장]을 방문하다. / 暗(암) ; 몰래. / 植渠(식거) : 그것을 심다. ‘渠’는 매화를 지칭한다.
③或(혹) : 혹시, 어쩌면. / 憫(민) : ~을 불쌍히 여기다. / 如鰥(여환) : 홀아비와 같다, 홀아비처럼. / 生燥槁(생조고) : 건조하게 살다.
④以(이) : ~라는 이유 때문에. 여기서는 ‘앞 구절과 같은 이유 때문에’라는 뜻으로 쓰였다. 希(희) : ~을 바라다. / 結伴(결반) : 짝을 맺다. / 共居諸(공거저) : 세월을 함께 하다. ‘居諸’는『시경(詩經)』에 보이는 ‘日居月諸(일거월저)’의 준말로 세월을 뜻한다.
⑤輞川(망천) : 왕유(王維)의 별장 이름인데, 여기서는 망천도(輞川圖)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망천도는 왕유 자신이 자기 별장 일대를 그린 그림이다. 이 시에서 망천은 당진 별장을, 망천도는 ‘당진 별장의 풍경’을 비유하는 말로 쓰였다. / 睛點(정점) : 눈동자가 찍히다, 눈이 찍히다.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는 성어에 보이는 ‘點睛’을 주술구조(主述構造)의 문장으로 고쳐 쓴 표현이다. / 圖(도) : 망천도. / 方活(방활) : 바야흐로 살아나다, 비로소 살아나다.
⑥和靖(화정) : 북송(北宋)의 시인인 임포(林逋)를 가리킨다. 당시의 황제였던 인종(仁宗)이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화정선생(和靖先生)’이라는 시호를 내려준 데서 생겨난 말이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던 그는 매화와 학을 좋아하여 매처학자(梅妻鶴子), 곧 매화를 아내로 삼고 학을 아들로 삼았다는 일화를 남기기도 하였다. 이 시에서는, 속세와는 거리를 두고 고요하게 사는 시인 자신에 대한 비유어로 가져다 쓴 말이다. / 心開(심개) : 마음이 열리다. 즐겁다는 말이다. / 興(흥) : 흥취. / 自餘(자여) : 저절로 넉넉해지다.
⑦惠顧(혜고) : 은혜로운 돌아봄이라는 말인데, 여기서는 청제 선생의 방문을 격을 높여 칭한 말로 쓰였다. 번역은 ‘방문하다’나 ‘찾아오다’ 정도로 하면 무난하다. / 助營(조영) : 무엇인가를 경영하는[만드는] 데에 도움을 준다는 말이다. / 삼경원(三徑院) : 세 길의 뜰, 은자의 뜰. “三徑”은 한대(漢代)의 은자(隱者) 장후(蔣詡)가 일찍이 향리로 돌아가 은거하면서 가시나무로 문을 막고 집 안에 세 갈래의 길[三徑]을 내어, 오직 양중(羊仲)과 구중(求仲)과만 교유(交遊)했다고 한 일화에서 생겨난 말이다.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도 이 “三徑”이라는 말이 보인다.
⑧謝衷(사충) : 감사하는 마음. / 只(지) : 오직, 다만. / 寄(기) : ~을 부치다. / 八行書(팔항서) : 여덟 줄의 글, 여덟 줄의 편지. 옛날 편지지는 여덟 줄로 되어 있어서 ‘八行’만으로도 편지를 뜻하기도 했는데, 여기서는 여덟 구로 이루어진 시, 곧 율시(律詩)로 쓴 편지라는 의미로 쓰였다.

[태헌의 번역]
당진 별장에 내가 없을 때 청제 형이 방문하여 그 품종 이름이 미인매인 매화 몇 그루를 심었는데, 오늘에야 와서 보고 선물에 감사하는 시를 짓게 되어 그에게 편지로 보내다

①미목이 서서 나를 맞는 것 보고 의아했던 건
②주인 없는 집에 손이 와서 몰래 심었기 때문
③어쩌면 홀아비처럼 건조하게 사는 게 불쌍해
④세월을 함께 할 짝 맺어주길 바랐던 것인가
⑤망천에 눈동자 찍혀 그림 비로소 살아났나니
⑥화정은 마음이 열려 흥취가 절로 넉넉하구나
⑦찾아와 세 길의 뜰 가꾸는 것 도와주었건만
⑧감사의 마음으로 그저 8행의 편지 부쳤을 뿐

[번역노트]
이 시는, 한문학이나 중국문학에 깊은 관심을 둔 독자가 아니라면 주석(注釋)의 도움 없이 원문과 번역만을 읽고 제대로 이해하기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다. 시에 활용된 전고(典故:전거(典據)가 되는 고사)의 심층적인 뜻을 파악하기 전에는 번역된 시라 하더라도, 글자는 한글이지만 뜻은 외계인의 말인 듯 불가해(不可解)의 언어로 여겨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 전고의 장벽은 한자라는 언어의 장벽 위에 있는 것이어서, 전고가 활용된 시를 단순히 언어학적인 지식만을 가지고 감상하려고 하다가는 큰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전고를 거의 활용하지 않고 시를 짓는 경우도 허다한데, 왜 시를 이렇게 이해하기 어렵게 짓는 걸까? 그러나 미안하게도 이 질문은 질문 자체가 사실 틀린 것이다. 짧은 시 속에 더 많고 더 깊은 뜻을 담기 위하여, 시인들이 전고라는 도구를 활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의도적으로 식견이 일천한 사람들에게 알기 어렵게 하거나, 남에게 자신의 학식을 과시하기 위한 방편으로 전고를 활용하는 경우도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대개의 전고는 시에 중후함과 심오함을 더해주는 장치로 활용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기왕에 전고 얘기를 하였으니 이 시에서 활용된 전고와 시의 내용에 대하여 먼저 얘기해 보기로 한다. 두 개의 전고가 복합적으로 쓰인 제5구는 청제(靑齊) 선생이 심은 매화가, 왕유(王維)의 망천도(輞川圖)와 같은 ‘당진 별장의 풍경화’에 생동감을 부여하는 화룡점정(畵龍點睛)이 되었음을 말한 것으로, 이 시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구절로 파악된다. 풍경을 화폭(畵幅)으로 삼고, 심어진 매화를 용(龍) 그림에서 마지막으로 찍는 눈동자로 여긴 이 비유는, 전고를 떠나 비유 자체만으로도 이미 극품(極品)이라 할 만하다.

후속되는 제6구는 시인 자신이 그 옛날 임포(林逋)가 된 듯이 기뻤음을 말한 것이므로, 제5구를 ‘원인(原因)’으로 한 ‘결과(結果)’가 되는 구절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제7구는 ‘청제 선생이 나무를 심은 의의’를, 은자(隱者)의 뜰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준 것으로 시인이 자리매김한 것이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시인이 왜 하필이면 ‘세 갈래의 길[三徑]’이라는 전고를 사용했을까 하며 의아해 하는 독자들이 더러 있을 듯하다. 역자가 보기에는, 기본적으로 제8구에서 언급한 ‘<편지> 여덟 줄[八行]’과 짝을 맞추기 위해 이 고사를 택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또 한편으로는 청제 선생이 몇 그루의 매화나무를 한 곳에 심은 것이 아니라 몇 군데 나누어 심었을 것으로 여겨지므로, 시인이 이 미인도 보고 저 미인도 보고 하다 보면-매화의 품종이 ‘미인매’니까- 뜰에 길이 자연스럽게 생겨나지 않을까 싶다. 그리하여 역자에게는 이 ‘세 갈래의 길[三徑]’ 전고가 무엇보다 재미있게 다가온다.

이제 이 시의 기본 내용으로 들어가 보자. 본인이 부재중에 지인이 찾아오는 일이 예전에는 흔했지만, 요즘에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이유는 현대인들 거의 모두가 핸드폰이라는 문명의 이기(利器)와 언제나 함께 하기 때문일 것이다. 청제 선생 역시 핸드폰이 없지는 않겠지만, 미리 전화를 해서 스케줄 잡는다고 수선떨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럴 필요가 없이 서로가 깊이 신뢰하는 사이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곧, 청제 선생에게는 혼자만의 방문도 헛걸음이 아닐 터라 그 흔한 전화 한 통조차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여겼을 공산이 크다. 그리하여 주인이 있던 없던 주인에게 나무를 선물하고 싶은 그 마음의 길을 따라가, 시인의 별장 뜰에다 몇 그루의 매화나무를 심어두고 돌아갔을 것이다.

그런데 나무를 심자면 무엇보다 먼저 나무부터 마련해야 한다. 청제 선생이 묘목상(苗木商)을 찾아가 매화나무를 고를 그 임시에 이것저것 물어보지 않았을 리가 만무(萬無)하다. 꽃이 좋은 나무인지, 열매가 좋은 나무인지 등등은 말할 것도 없고, 나무의 품종 이름까지도 꼼꼼하게 확인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묘목으로 ‘미인매’를 고른 것은 청제 선생의 생각이 깊이 투영된 결과로 보아야 한다. 그것을 당연히 짐작했을 시인이 청제 선생의 심사로 추론한 것이 바로 함련(頷聯:3·4구)의 내용이다.

시인이 별장에 혼자 머무는 동안은 홀아비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청제 선생도 익히 알아, 시인이 거처하는 방의 창문 앞에다 따로 미인매(美人梅) 한 그루를 심어 언제나 볼 수 있게 하였던 것은, 그 옛날 임포처럼 매화나무를 부인으로 삼아 적적함을 달래보라는 뜻이었던 듯한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유독 그 매화나무만 말라 죽어버렸다고 한다. 시인이 이를 매우 안타까워하기에 역자가, “나무하고도 바람피우지 말라는 하늘의 경고인 듯합니다.”라고 하였더니, 마치 소년처럼 해맑게 웃으며 기뻐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시인 이영주 교수는 역자의 대학교 선배님이지만, 역자의 시우(詩友)이기도 하고 주우(酒友)이기도 한, 고요히 강호의 낚시꾼으로 여생을 보내고 있는 한시(漢詩)의 진정한 고수(高手)이다. 역자는 그저 시인께서 건강하시기만을 바랄 뿐이다.

역자가 오늘 소개한 이 시는 칠언율시(七言律詩)로 그 압운자가 ‘吾(오)’, ‘渠(거)’, ‘諸(저)’, ‘餘(여)’, ‘書(서)’이며, ‘吾(오)’는 인운자(隣韻字)이다.

[여적(餘滴)]
일반 독자들에게는 다소 재미없고 어렵게 들릴지는 몰라도 이 시는 작법과 관련하여 특기할 사항이 몇 가지 있어 여기에 소개하기로 한다.

첫째로 이 시는, 제목에 사용된 한자가 36자나 될 정도로 제목이 매우 긴 작품이다. 이러한 시제(詩題)의 장형화(長型化)는, 서(序)나 부제(副題) 혹은 주(注)로 처리해야 할 내용을 제목에 반영한 것이라는 측면에서, 시를 단순화시키는 장치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시보다는 제목이 훨씬 짧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이를 관행으로 준수해온 전통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시제의 장형화는 일단 독자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하고, 나아가 파격이 주는 신선함을 기대할 수도 있기 때문에, 시인이 의도한 일종의 멋으로도 간주할 수 있다.

둘째로 이 시는, 네 연이 모두 대구(對句)로 구성된, 이른바 전대격(全對格)의 작품이다. 전대격의 시는 4구로 구성되는 절구(絶句)에서는 비교적 흔하게 보이는 편이지만, 율시 가운데도 칠언율시에서는 그 예가 무척 드물다. 네 개의 대구 가운데 두 번째인 함련은 유수대(流水對)라는 사실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유수대란 흐르는 물처럼 이어지는 대구라는 뜻으로 형식적으로는 대(對)를 이루었지만, 내용상으로는 두 구가 합해져야 비로소 완전한 하나의 문장이 되는 것이다.

셋째로 이 시는 홀수 구의 끝 글자에 사성(四聲)을 번갈아 사용하는, 이른바 사성체용법(四聲遞用法)이라는 고난도의 작법을 구사한 작품이다. 이 사성체용법은 칠언율시 작법으로 매우 드물게 운용되는 것인데, 이를 즐겨 쓴 대가로는 두보(杜甫)를 들 수 있다.

넷째로 이 시는 평성 ‘魚(어)’운으로 압운한 시이지만, 제1구의 압운자인 ‘吾(오)’는 본운(本韻)이 아니라 이웃한 운인 인운(隣韻)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吾(오)’는 ‘虞(우)’ 운목(韻目)에 속하는 글자이다. 칠언율시의 경우 제1구인 수구(首句)에 압운할 때 본운을 쓰지 않고 인운을 쓰는 것은 대체로 송대(宋代) 이후에 유행한 방식으로, 압운(押韻)에 변화를 추구하여 일종의 멋을 낸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2022. 7. 5.

<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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