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상공회의소가 어제 정부에 규제혁신 과제 100개를 선정해 전달했다. 정부가 본격적인 규제완화 작업에 나서기에 앞서 산업 현장에서 ‘목을 죄는 올가미’처럼 느끼는 규제를 취합해 전달한 것이다. 기업 숨통을 터주는 차원에서 이것만큼은 하루빨리 해결해 달라는 ‘급행 민원 리스트’에 다름 아니다.

자율주행 로봇의 보도·횡단보도 통행 허용이나 전기차 무선충전기술 상용화 허용, 비대면 진료 허용, 법인세율 인하 등 그간 경제계에서 수없이 요구해온 과제가 망라돼 있다. 정부도 익히 알고 있는 내용들이다. 곧 경제부총리 주도 ‘경제 규제혁신 TF’를 출범시키고 작업에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기업 현장에는 기대만큼 우려도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윤석열 정부가 역대 어느 정권보다 규제개혁에 의지를 보이는 것은 평가할 만하지만, 미심쩍은 부분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우선 공무원들이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지적은 흘려들을 부분이 아니다. 모든 규제엔 나름의 명분과 이유가 있고, 다수의 이해 관계자가 얽혀 있기 마련이다. 녹록지 않은 현실적 사정이 도사리고 있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금융·산업 분리나 기업집단 규제, 수도권 규제 같은 덩어리 규제가 대표적이다. 투자하려는 기업들 입장에서 보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조항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도, 규제 존속을 주장하는 목소리를 돌파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공무원 입장에서 보면 규제개혁의 보상은 적고 위험 부담은 클 수밖에 없다. 자칫 특혜설에 휘말렸다가는 공무원 경력에 큰 흠집을 남길 수 있다. 나중에 정권이 바뀌면 감사원 등으로부터 치도곤을 당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역대 정권이 앵무새처럼 되풀이해온 규제 혁파 구호가 번번이 허언으로 끝난 것이다.

공무원들을 안심시키고 규제 혁파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줄 사람은 대통령밖에 없다. 업무에 대한 면책을 공식화하고 감사원 공정거래위원회 검찰 금융감독원 등의 권력기관장도 규제개혁 작업에 참여시켜야 한다. 개별 규제에 대한 우선순위 설정과 장단기 해소 대책을 마련해 경제 전반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주는 일도 중요하다. 규제의 불투명성이 높아질수록 기업들은 투자와 고용을 망설일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공무원들과의 회의체를 만들어 주재하고 규제개혁 상황판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기업인들의 목소리를 듣는 회의도 정례화하면 더 탄력이 붙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