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거책 유인 피해 증가…사회초년생인 남성·대학생 주 타깃
전문가 "쉬운 알바 의심부터…수거책이 사라져야 보이스피싱 피해자도 줄어"
"나도 모르는 새 보이스피싱 가담…돌아온 건 징역형"
"진짜 몰랐어요.

판사님, 저는 정말 알바를 구한다고 해서 간 것뿐이었어요.

담당 과장이라는 사람이 '채권 회수업무'라고 설명했다고요…."
사기, 사문서위조, 위조사문서행사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20)씨는 법정에서 시종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서울동부지법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징역 8개월을 선고했다.

A씨의 어머니는 "사회초년생 아들이 일당 15만원을 준다는 구인광고를 보고 덥석 물었던 것"이라며 "피해 금액 7천600만원 중 절반 가까이 변제했다"고 말해 안타까움을 샀다.

4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이처럼 사회 초년생들을 대상으로 '간단한 알바'라고 속여 보이스피싱 조직의 수거책으로 삼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으로 나타나 구직자들에게 주의가 요구된다.

수사당국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조직이 피해자로부터 돈을 전달할 '현금 수거책'을 만드는 방법도 시간이 갈수록 진화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초창기에는 '현금을 전달해달라'는 직접적인 요구였다면, 피싱 범죄가 비교적 알려진 지금은 온라인 구인·구직 사이트를 통해 작업이 이뤄진다.

먼저 중요 서류 운반, 물건 대금, 채권 추심 등 간단한 업무를 수행하면 일당 10만∼15만원을 지급한다는 허위 광고를 게재하는 방식으로 구직자들을 유인하는 식이다.

수거책에게는 중요한 서류 전달 업무라고 속이고, 실제로 보이스피싱 피해자에게 '노란색 서류 봉투 안에 현금을 넣으라'고 하면 현금 수거책 본인도 수거책이라는 점을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범행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또는 화장품 유통업자의 도맷값, 동대문 의류상가의 옷값, 가락시장의 농수산물 물건값 등 현금이 많이 쓰이는 곳에서 '물건값을 받아달라'고 지시하는 수법도 사용된다.

정당한 채권추심업무라고 속이면서 '빌려준 돈을 받아오면 된다'라고 둘러대거나, 금융감독원 산하 직원으로 채용하겠다며 '계좌 압류 직전에 있는 피해자의 현금을 미리 보관하는 업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나도 모르는 새 보이스피싱 가담…돌아온 건 징역형"
보이스피싱 조직이 이렇게 수거책 모집을 할 때 가장 큰 특징은 '검은 바지에 흰 셔츠' 등 특정한 옷차림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피해자와 수거책이 서로를 알아보기 쉽게 하거나, 특정 기관 직원처럼 보이게 하려는 것이다.

수거책 모집은 사회 경험이 부족한 20대 초반∼30대 남성이 주요 대상으로 이뤄진다.

서울 일선 경찰서에서 보이스피싱 현금 수거책을 수사하는 한 경찰 간부는 "실제로 검거된 수거책들을 보면 젊은 남성이 50∼60%"라고 전했다.

보이스피싱 조직의 수거책 모집 수법이 교묘해지면서, 경찰 수사에도 이들 하부조직만 검거되고 몸통은 빠져나가는 '꼬리자르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경찰청의 '보이스피싱 피의자 유형별 검거인원' 통계를 보면 지난 5년간 검거된 대면편취책, 인출책, 절취책 등 '하부 조직원'은 지난 2018년 7천128명에서 2019년 1만748명, 2020년 1만3천813명, 지난해 1만5천785명으로 꾸준히 증가세다.

올해 들어서 5월까지만 해도 벌써 5천882명이 검거됐다.

수사 당국은 보이스피싱 범죄 단속을 강화하고 나섰다.

경찰은 범정부 합동 '전기통신금융사기 통합 신고·대응센터'를 설치해 원스톱 대응에 나설 방침이다.

서울동부지검은 보이스피싱 정부합동수사단이 설치된다.

수사당국의 한 관계자는 "수거책들은 피의자이자 피해자에 해당한다"며 "단순히 서류를 전달한다고 해서 쉽게 벌 돈이면 의심을 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