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예방의 시대
인류는 기술의 급격한 발전을 통해 또 다른 신세계를 꿈꾸고 있다. 인공지능(AI), 나노 기술 등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며 환경의 통제력을 확장하고, 수명과 인지 능력을 향상하기 위해 몰두하고 있다. 트랜스 휴머니즘은 머지않아 우리의 두뇌와 사물인터넷(IoT)을 연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구체적인 실현 시점을 제시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의 등장으로 이 거대한 거품은 꺼져버렸다. 전 세계를 혼란에 빠뜨렸고, 단 몇주 만에 수십억 명의 사람이 전혀 다른 차원의 세상을 경험했다. 낯선 감염병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질병의 파괴적 영향 앞에서 통제력 상실을 느꼈다. 이 세상이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쉽게 붕괴할 수 있다는 현실을 직면했다. 2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아직도 ‘트라우마의 스카프’에 매여 있다.

이 끔찍한 경험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필자는 더 이상 위협이 느껴지지 않을 때 경계심을 쉽게 잃는 인간의 본성을 생각해 본다. 인류의 역사는 감염병의 지속적인 출현과 함께했다. 우리는 또 다른 감염병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지금의 이 경험을 유산으로 삼고 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이 위기를 통해 얻은 것이 있다면, 더 나은 미래 의료 시스템을 위한 기술 발전의 중요성이다. 또한 사회 속에서 무엇을 우선순위로 둬야 할지를 배우게 됐다. 코로나는 우리에게 위기 극복을 위한 놀라운 시스템의 능력을 앞당겨줬다. 디지털 기술을 통한 감염자 추적, 바이러스 전파를 막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그에 따라 도입된 재택근무 시스템 등이다. 사람들은 새로운 비대면 업무 환경과 원격 화상회의에도 빠르게 적응했다.

또한 코로나는 ‘예방’이 ‘치료’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라는 인식을 심어 주기도 했다. 세계 곳곳에서 백신 접종으로 인한 후유증이 존재했지만, 백신이 인류를 보호하고 감염병을 통제해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강력한 힘임을 다시 확인했다. 코로나 백신 효능에 대한 논쟁이 있지만, 최근 세계적 권위의 의학 저널 란셋(The Lancet)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코로나 백신 예방접종 프로그램 시행 후 한 해 동안 약 2000만 명의 생명을 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우리 사회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인도·태평양 지역의 긴장, 그리고 지구 온난화로 인한 심각한 환경 위험 등 다양한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다. 필자는 이럴 때일수록 우리 인류가 그 어떤 기술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취약한 존재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예방’이 사회 진보와 지속 가능성을 위한 강력한 지렛대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