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韓銀·정부 물가대응 엇박자, 괜찮나
한국은행의 지속적인 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물가 상승세는 여전히 가파르기만 하다. 5월 소비자물가지수가 전년 동월 대비 5.4% 상승한 데 이어 최근 한은이 발표한 소비자의 향후 1년간 인플레이션 기대치도 10년 만의 최고치인 3.9%를 나타냈다. 이에 한은과 정부는 물가 안정을 위해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문제는 두 정책 당국의 대응이 서로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한은은 가계대출 부실화 위험을 면밀하게 모니터링하며 금리 인상 기조를 지속하고 있다. 기준금리 인상은 대출금리 인상으로 이어져 소비와 투자를 줄인다. 만약 물가 상승 압력이 시중 유동성 확대로 소비와 투자가 과열되는 등 수요 측 요인에 의한 것이라면 기준금리 인상은 소비와 투자를 진정시켜 인플레이션을 잠재운다. 현재와 같이 상당 부분 대외 여건에 따른 공급 측 요인이 인플레이션을 견인하더라도 기준금리 인상 외에 뚜렷한 대안은 없다.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에너지와 수입 곡물 가격 상승 등 공급 측 요인들이 대체로 한국이 통제 불가능한 대외 여건에 기인하므로 공급 감소에 발맞춰 총수요를 줄여야 물가를 잡을 수 있다.

정부는 민생 물가에 집중하며 각종 세금을 인하해 물가 상승 압력에 대응하고 있다. 유류세, 부가가치세, 관세 인하를 통해 품목별 가격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정부는 기업에 과도한 임금 인상 자제를 요청하고 금융회사의 대출금리 인하 필요성을 역설하는 등 시장 가격을 통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런 정부의 가격 통제 시도는 최근 물가 상승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되는 과잉 유동성이나 세계 공급망 차질에 대한 처방이 아니기에 실효성이 크지 않다. 효과가 있다 하더라도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효과를 반감시킬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가격은 가계가 소비를, 그리고 기업이 생산을 결정하는 데 참고하는 신호다. 가격이 오르면 가계가 재화와 서비스 소비를 줄이면서 수요가 낮아지는 반면 기업은 생산을 늘려 시장에 재화와 서비스를 더 많이 공급한다. 이렇게 수요는 감소하고 공급이 늘어나면 가격은 하락하기 마련이다. 만약 가격이 시장의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면 가계와 기업의 의사결정은 왜곡될 수밖에 없다.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금융회사에 대출금리를 인하하도록 압박하면 그렇지 않을 때에 비해 가계의 소비와 대출, 그리고 기업의 투자 감소폭은 줄어들 것이다. 이는 총수요를 줄여 물가를 안정시키는 기준금리 인상의 효과를 떨어뜨린다. 정부가 품목별 가격을 통제해 물가 상승세를 낮추려 한다면 이렇게 통제된 가격을 포함해 추계된 물가상승률은 한국 경제의 정확한 물가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다. 실제 상황보다 낮은 물가상승률을 바탕으로 결정된 기준금리 인상폭이 물가 상승 압력을 근본적으로 잠재우기에 충분치 못할 것임은 물론이다. 또 물가상승률 억제를 위한 각종 세금 감면은 시중에 풀린 유동성이 회수되는 과정을 지연시켜 금리 인상 효과를 낮춘다.

물가 안정은 한은의 최우선 책무인 만큼 물가 안정을 위한 정책 방향타는 한은이 쥐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부는 재정지출을 축소하고 불필요한 세금 감면을 줄여 한은의 물가 안정 목표 달성을 지원해야 한다. 또한 이번 기회에 에너지와 수입 곡물 등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수입처를 다변화하고 장기적으로 해외 자원 개발을 적극 검토하는 것도 정부에 기대할 수 있는 역할이다.

현재의 인플레이션 위기에 대한 대응은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정책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작동하느냐에 그 성패가 달렸다. 정부의 물가 대책이 통화정책과 조화를 이뤄 금리 인상 효과가 조기에 나타나면 추가적인 금리 인상 필요성이 작아져 경기 하방 압력도 줄어들 것이다. 물가 안정을 위해 한은과 정부 간 공조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