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미국에서 재택근무가 도입되자 플로리다 등 공화당 텃밭으로 이주하는 미국인들이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상대적으로 집값이 저렴하고 세율이 낮은 곳으로 몰려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코로나19로 달라진 美 경제지형

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씽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의 연구 자료를 인용해 2020년 2월 코로나19가 퍼진 뒤 지금까지 공화당 우세지역(red state·적색주)가 미국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0.5%포인트씩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연구에 따르면 지난 5월 적색 주에선 34만 1000개의 일자리가 늘었고, 청색주(blue state·민주당 우세지역)는 130만개의 일자리가 부족했다.

미국 경제의 중심지가 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코로나19 이전까지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 등 미국 서부와 뉴욕 등 동부 대도시를 중심으로 경제 발전이 이뤄졌다. 정보기술(IT) 업체들이 대거 들어서며 부동산 가격이 뛰었다.
자료=월스트리트저널(WSJ).
자료=월스트리트저널(WSJ).
다른 주들은 상대적으로 발전 속도가 더뎠다. 하지만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 컨설팅업체 GPEC의 크리스 카마초 대표는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미국인의 생활 양식이 달라졌다”며 “회사보다 개인 사생활에 초점을 맞춰 거주지를 정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이뤄진 거주지 이동의 결과다. 미국의 개인신용평가사 에퀴팍스의 신용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월까지 1년 동안 4600만여명이 주소를 이전했다. 2010년 이후 가장 많은 수치다. 주로 플로리다, 텍사스, 노스캐롤라이나 등 공화당 우세지역으로 유입됐다. 주민 유출이 가장 많은 곳은 캘리포니아, 뉴욕, 일리노이 등 모두 민주당 우세지역이었다.

전문가들은 정치 성향보다 경제적 요인에 따라 거주지를 선택했다고 해석했다. 재택근무가 확산하자 기후와 도시의 교통량, 세율 등의 요인이 회사 위치보다 거주지 선택에 우선순위가 됐다는 설명이다. 특히 주마다 다른 세율이 이주 방향을 정했다. 미국기업연구소가 2020년 4월부터 2021년 6월까지 미국 내 이사 건수를 분석한 결과 유입 수가 많은 주 열 곳의 평균 소득세율은 3.8%대였다. 플로리다, 텍사스, 테네시, 네바다 등 네 곳은 소득세를 부과하지 않았다.

유출이 많은 10개 주의 평균 소득세율은 10%에 달했다. 주택 가격도 향방을 갈랐다. 유입이 많은 상위 10개 주 집값은 하위 10개 주보다 평균 23% 저렴했다. 싱크탱크 경제혁신그룹(EIG)의 연구에 따르면 2020년 7월부터 1년 동안 대도시에 가까울수록 거주자의 유출 건수가 많았고, 교외로 갈수록 유입 건수가 늘었다.

재택근무가 활성화되며 나타난 현상이다. 미국 시카고대, 스탠퍼드대, 멕시코 ITAM 등 세 대학교의 공동연구 결과 코로나19가 멎은 뒤에도 미국 노동자의 16%는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31%는 일주일에 2~3회만 사무실에 출근하는 하이브리드 근무체제를 적용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화이트칼라 사무직이었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노동자 이주행렬 따라 기업도 본사 이전

노동자들의 이사 행렬을 따라서 미국 내 주요 기업들도 본사를 옮기고 있다. 미국의 헤지펀드 시타델은 본사를 시카고에서 마이애미로 이전할 계획이다. 중장비업체 캐터필러도 본사 주소지를 일리노이에서 텍사스로 바꿀 방침이다.

본사가 이전되며 각 도시 상업지구의 성과가 엇갈렸다. 보안업체 캐슬시스템즈에 따르면 텍사스 오스틴과 휴스턴 사무실 입주율은 50%에 육박했다. 미국 내에서 가장 높은 수치다. 반면 캘리포니아의 샌프란시스코와 산호세 상업지구의 공실률은 각각 66%에 달했다. 로스엔젤레스의 공실률도 60%에 가까웠다.

2년간의 유입 덕에 재정 상황이 개선된 주가 늘었다. 무디스애널리틱스가 경제회복지수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달 상위권을 차지한 15개 주 중에서 11개가 적색주였다. 하위 10개 주 가운데 8개 주가 청색주로 나타났다. 무디스애널리틱스는 상품 부가가치, 고용 현황, 신규 주택 등록건수 등 13가지 지표를 종합해 지수를 구성했다.

플로리다주 정부는 올해 상반기 역대 최대 세입을 전망했다. 테네시주 정부도 지난 4월 실업률이 3.2%로 나타났다. 1972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테네시주의 경제성장률은 8.6%로 미국 전체에서 가장 좋은 성과를 거뒀다. 덩달아 법인세 세입도 증대됐다.

불어난 예산은 지역에 환원될 예정이다. 선순환 체계가 구축될 거란 해석이 나온다. 론 드산티스 플로리다주지사는 불어난 예산을 교육비로 활용할 거라고 공언했다. 빌 리 테네시 주지사도 공립학교 교사 임금 인상과 더불어 주립대 등록금 동결, 군인 추가 고용 등을 약속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