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면 내년 하반기부터 중소기업에도 퇴직연금제도 도입이 단계적으로 의무화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사태가 안정권으로 접어들면서 2년 넘게 멈춰있던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개정안 논의가 하반기 국회에서 재개될 가능성이 커져서다.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5월 발의한 이 개정안은 현행 퇴직금제도를 폐지하고 모든 사업장에 근로자 퇴직연금 가입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앞서 개정된 퇴직연금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 도입에 이어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근로자들의 퇴직금 안정성이 높아질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역사로 사라지는 퇴직금 제도

1953년 도입된 퇴직금제도는 말 그대로 정해진 직장을 그만뒀을 때 회사로부터 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한 제도다. 만 1년 이상 근무한 근로자라면 법적으로 1년당 30일분 이상의 평균임금을 회사로부터 지급받을 수 있다.

안정적인 노후보장을 위해 도입된 퇴직금 제도는 그러나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우선 일시금 지급 방식의 퇴직금을 회사가 지급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전적으로 회사의 존속 여부에 의존하는 구조다. 아무리 오래 근속했어도 퇴직쯤에 회사가 망해버릴 경우 퇴직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겼다.

일시불로 목돈 지급되는 방식도 문제로 지적됐다. 대량의 목돈을 잘못 굴려 순식간에 날려 먹기 십상이었다. 실제 중노년층들이 퇴직금으로 받은 목돈을 투자사기, 혹은 잘못된 파생 상품 등에 투자했다가 날려 먹는 사례가 많아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했다.

2005년 12월 퇴직연금제도가 도입된 배경이다. 퇴직연금제도는 자산관리를 은행 또는 퇴직연금사업자에 맡기고 일시금 지급이 아닌 연금 지급 시스템으로 바꾼 제도다. 안 의원이 발의한 퇴직급여법은 퇴직금제도를 폐지하고 퇴직연금제도를 전면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안 의원은 “현행 퇴직금 제도는 사업장 도산 시 노동자의 퇴직금 수급권이 확보되지 않고 노동자 퇴직 시 사업장의 일시금 부담이 가중되는 문제가 있다”며 “일하는 모든 노동자가 퇴직 후 안정적인 노후 자산 확보와 노후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영세사업자 지원방안 '과제'

퇴직연금제도가 도입된 지 18년 차를 맞았지만, 여전히 제도 사각지대에 놓인 근로자가 많다. 현행법은 아직 퇴직연금제도와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제도 대신 퇴직금제도 설정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어서다.

안 의원실에 따르면 2019년 기준 5인 미만 사업장의 퇴직연금제도 도입률은 10.7%에 불과하다. 도입률이 90%에 달하는 300인 이상 사업장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개정안은 시행일을 법 통과 후 1년으로 규정하면서 기업 규모별로 법 시행일 이후 6년 6개월까지 단계적(5단계)으로 의무화하도록 했다. 코로나 상황 등으로 어려운 영세기업 등의 부담을 고려했다. 사용자(회사)가 퇴직연금제도(또는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제도)를 설정하지 않으면 1년당 30일분 이상의 평균임금을 일시금으로 지급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았다.

안 의원이 퇴직급여법을 발의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앞서 디폴트옵션 도입을 골자로 한 개정안은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해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디폴트옵션은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 가입자가 적립금 운용 방식을 명시적으로 지정하지 않았을 경우 사전에 지정한 상품으로 운용하게 하는 제도다. 1~2%대에 그치는 퇴직연금 수익률을 올리기 위해 디폴트옵션 도입 필요성이 7년간 제기돼 왔다. 이미 영국, 미국, 호주 등에서 시행 중이고 일본도 최근에 시행했다.

올해부터는 30인 미만 사업장을 대상으로 한 중소기업 퇴직연금제도, 기업별로 확정급여형(DB형) 적립금 운용위원회 설치, 합리적 수수료 부과 등 수익률을 제고하고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가 시행된다.

정부 퇴직연금 기금 지원의 사각지대인 30인~100인 사업장 지원방안 등 풀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안 의원실 관계자는 ”30~100인 사업장은 기금운용사의 관심 밖에 밀려나 있고 정부 지원을 받지도 못해 연착륙이 쉽지 않다“며 ”1년 미만 근로자들에 대한 문제 등도 장기적 해결과제”라고 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