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세계적인 경매 회사인 소더비에서 미국 헌법 초판의 인쇄본이 경매에 부쳐졌습니다. 이때 기업가나 부자가 아닌 생소한 조직, 컨스티튜션 DAO(Constitution DAO)가 경매에 참여해 화제가 됐습니다.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헌법 초판본을 대중에게 전시하자는 목표로 모인 이 DAO는 결국 낙찰에 실패했지만, 약 일주일 만에 1만 7473명의 사람으로부터 4000만 달러를 모금했다는 의미 있는 기록을 남겼죠.

올해초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간송미술관이 국보 '금동삼존불감'을 매물로 내놓자 '헤리티지DAO'라는 곳이 등장해 이를 25억원에 매입했죠. 그리고는 간송미술관에 영구 보존토록 기부했습니다.

DAO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블록체인 기반의 커뮤니티 정도로만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이제 다양한 분야에서 '실력 행사'에 나서면서 산업 생태계를 흔들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기획자' 집단이자, '창업자' 그리고 '소비자'가 되고 있습니다.

DAO가 앞으로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리고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이용관 블루포인트 대표가 날카로운 필력으로 진단했습니다.


탈중앙화 자율 조직(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의 약자인 DAO는 블록체인 기술을 바탕으로 특정 조건이 충족됐을 때 어떤 계약이 자동으로 이행되게 하는 거래 프로토콜이라고 볼 수 있다.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DAO에 참여하고, 참여한 구성원들은 ‘거버넌스 토큰'이라고 불리는 의결권 토큰을 통해 의사결정을 한다. 중앙 집권 주체나 국경의 제한도 없이, 투자나 비즈니스 같은 특정 목적을 위해 모일 수 있는 조직이다. DAO는 투명하고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조직이라는 점에서 장점을 갖는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DAO라는 형태의 조직이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다. 2016년, ‘더 다오(The DAO)’라는 시도를 통해, 이더리움을 모아 특정 프로젝트에 투자하고 지분을 토큰으로 분배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당시에는 코드의 취약점을 파고든 해커에 의해 공격당하면서 사라졌다. 이런 DAO가 2021년, 웹3.0의 가능성과 함께 다시금 화두에 오른 것이다. 그 사이 블록체인 기술 등이 발전하면서 DAO가 다양한 산업군에서 펼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투명하고 개방적이며 효율적인 조직

DAO가 화두가 된 데에는 기존 조직과 비교했을 때 투명하게 운영되며, 개방적일 수 있다는 고유한 특성이 한몫했다. ‘탈중앙화 자율 조직'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DAO는 물리적으로 분산된 조직이다.

DAO의 네트워크는 서로의 무결성을 검증하는 전 세계 수천 대의 컴퓨터에서 호스팅되므로, 하나의 컴퓨터에서 어뷰징을 시도하더라도 다른 컴퓨터에서 이 시도가 작동하지 않는 등 한 지역에 인프라가 모인 구조보다 안정성이 높다. 이 덕분에 특정 권력에 의한 개입이 거의 불가능하며, DAO의 방향성 결정 및 자금 관리 등이 모두 블록체인 기술을 토대로 투명하게 이뤄질 수 있다.

또한 장소의 제약을 받지 않는 개방적인 조직으로,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거버넌스 토큰을 가진 사람이라면 전 세계 어디서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이 덕분에 DAO에 참여하는 인력 구성에 다양성을 가질 수 있다. 각 참여자의 역량이나 기여 형태 등 모든 가능성에 열려있기 때문에 전통적인 조직에 비해 유연하고, 넓은 인재 풀에 접근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모든 계약과 규칙은 특정 조건을 충족하면 자동으로 계약이 이행되게 하는 ‘스마트 콘트랙트'를 통해 실행된다. 따라서 기존의 기업들이 법규 준수나 내부 통제를 위해 들여온 노력을 효율적으로 자동화할 수 있다. 실제로 DAO 기반의 암호 화폐 거래소인 유니스왑(Uniswap)의 구성원은 7명이지만, 1,200명이 넘는 직원이 미국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인 코인베이스(Coinbase)보다 더 많은 거래량을 처리할 수 있다.

각 산업 분야부터 사회문제 해결까지DAO의 가능성

이렇듯 기존 조직과는 다른 특성을 가진 DAO는 다양한 산업군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미술 작품 수집과 유통 활동, 작곡 커뮤니티, 제약 산업 등이 대표적이다.

핑거프린츠 DAO(Fingerprints DAO)는 개인 단위의 기업가, 예술가, 큐레이터, 개발자 등이 모여 공동으로 예술 작품을 수집하고, 수집한 예술 작품의 가치를 증대하기 위해 활동하는 조직이다. 일반적으로 미술작품은 소더비나 크리스티 등 경매 회사 혹은 화랑, 아트페어 등을 통해 유통되거나 국가나 기업의 지원을 받는 미술관 등을 통해 수집, 전시돼왔는데 DAO가 새로운 가능성을 연 것이다.

온라인상에서 사람들을 모으고, 창작물을 배포할 수 있도록 돕는 예술가들의 커뮤니티에서 시작한 작곡 커뮤니티인 송캠프 DAO(Song Camp DAO)도 마찬가지다. 송캠프 자체는 작곡계에서 이미 흔한 문화로, 여러 작곡가가 협업해 노래를 작곡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좋은 곡이 나오더라도 배급사나 레이블 등 여러 이해관계자가 얽혀있는 음악 산업의 구조상 빛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실험적인 곡들이 진부하게 편곡되기도 한다.

송캠프 DAO는 이런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매회 뮤지션과 비주얼 아티스트, 프로젝트 운영자 등이 팀을 이뤄 협업하면서 2주 기간 동안 3곡을 만들고, 해당 곡에 어울리는 커버 이미지를 제작하며 곡의 출시를 위해 자금을 조달한다. 이들은 DAO 커뮤니티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회사 설립이나 유통채널 관리 등의 절차 없이 가볍고 빠르게 곡 작업이라는 목적 달성을 가능하게 한다. 이들의 첫 번째 캠프에서 만들어진 세개의 곡들은 출시한 지 1분 만에 모두 예비 입찰가를 충족해 높은 가격에 판매됐다.
송캠프 다오(DAO)가 출시한 앨범 커버 / 출처: 송캠프
송캠프 다오(DAO)가 출시한 앨범 커버 / 출처: 송캠프
제약 산업에서도 DAO를 통한 연구개발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비타 DAO(Vita DAO)는 암이나 알츠하이머 등 노화와 관련된 질병에 대한 제약 R&D를 지원하는 DAO다. 바이오 제약 분야는 지식재산권과 특허의 미래 가치에 따라 연구개발 비용을 투자받는 관행이 있었는데, 이런 구조는 환자나 연구자에게 재정적, 시간상으로 부담을 줄 수밖에 없었다.

비타 DAO는 연구데이터, 지식재산권, 노동(홍보, 법률 등)을 통해 기여할 사람들과 자금을 모집하고 새로운 치료제 연구를 지원한다. 연구를 통해 얻은 지식재산권은 함께 소유하며 수익화 방향을 모색하기도 한다. 그 결과 지금까지 900만 달러 규모의 연구 지원 자금을 모금하고 코펜하겐 대학교 등과 학술적 파트너십을 맺었으며, 30개 이상의 연구 프로젝트를 검토하고 총 15만 달러를 지원했다.

한편 기후 문제 등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DAO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클리마 DAO(Klima DAO)는 탄소배출권 경제의 새로운 이니셔티브를 지향하는 조직이다. 탄소 배출 크레딧을 토큰화하고 이를 거래하게 하면서, 거래된 배출권의 양을 투명하게 공개하면서 개인과 기업에 경각심을 일깨우는 역할을 한다.

이런 시도들은 DAO가 지향하는 ‘아이디어 능력주의'를 실현하는 방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역사상 쉽게 구현되지 못한 일들을 DAO의 인프라를 활용해 낮은 비용으로 구현한다는 뜻이다. 가능성 있는 아이디어라면 어떤 것에든 열려 있고, 전 세계 어디서든 참여할 수 있다. 전통적인 조직 구조의 효율을 능가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졌다는 뜻이다.

벤처 투자 영역에서의 DAO

DAO를 적용하려는 시도는 벤처 투자 영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기존의 벤처 투자 영역은 높은 진입 장벽 탓에 누구나 접근하는 것이 쉽지 않았고 대체로 비공개로 이루어져 왔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DAO의 특성들 덕분에 많은 사람에게 혁신에 투자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줄 뿐만 아니라 각 벤처 프로젝트가 투자를 유치함에도 전통적 투자자로부터의 자금 조달이 아닌 새로운 방식을 고민할 수 있게 했다.

그 시작은 더 라오(The LAO)로, 2020년 4월 델라웨어 주 법인으로 설립된 DAO였다. DAO의 특성이 모두에게 개방적인 조직임에도 불구하고, 더 라오는 99명의 공인 투자자로 참여 자격을 제한했다는 한계를 가졌다. 하지만 벤처 투자 영역에서 DAO를 적용하려는 상징적인 시도였다. 이런 한계점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또 다른 벤처 투자 DAO인 스태커 벤처스(Stacker Ventures)가 2021년 2월 DAO를 구축했다. 유망한 블록체인 기술에 투자하고 액셀러레이팅하겠다는 미션을 가진 스태커벤처스는 2021년 3월 첫 펀드를 약 730만 달러 규모로 결성했다.

또 다른 벤처 투자 DAO인 메타카르텔 벤처스(Metacartel Ventures)는 법인 설립 전의 ‘프로젝트' 단계에 투자하는 엔젤 투자 연합에 가깝다. 이들은 투자뿐만 아니라 블록체인 생태계에 관심과 전문성을 축적해온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 각 프로젝트의 방향성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고민을 나눌 수 있다는 장점을 갖는다. 이들은 지금까지 평균 2만~10만 달러 규모를 20여 개 프로젝트에 투자했다. 아직까지는 DAO라는 조직에 친숙한 주체들이 블록체인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투자하는 프로젝트가 주로 블록체인 기반의 웹 3.0 분야에 몰려 있다는 점에서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기존의 벤처 투자 영역을 더욱 확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주목할 만하다.

DAO로 혁신하는 벤처투자자들

한편 이런 새로운 시도들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벤처 투자자들만이 할 수 있는 영역도 분명히 존재한다. 성장에 대한 지원이나 인적 가치 제공 등 ‘자금 조달'의 역할을 넘어선 벤처 투자자들의 역할이 그 지점이다. 이런 고민의 일환으로, 벤처 투자자들은 더욱 인적 네트워크 제공이나 밀접한 액셀러레이팅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자신도 혁신을 꾀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의 전통적 벤처캐피탈 중 한 곳인 베세머 벤처 파트너스(Bessemer Venture partners)다. 이들은 올 3월 DAO를 직접 시작하면서, 이를 기존 자신들의 역할을 강화하는 데에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앞선 벤처 투자 DAO들처럼 투자 수단으로써 DAO를 활용하지는 않지만, DAO를 통해 ‘커뮤니티'를 구축하고자 한다. 자신들의 포트폴리오사 창업자들과 기술 리드(Tech Executives), 비 포트폴리오 창업자들을 연결하는 커뮤니티를 만들어 사업과 아이디어 교환이 가능한 환경을 제공하고 교육 채널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느슨한 연대라는 장점이 오너십의 부재라는 양날의 검으로 작용할 수 있는 DAO와 정반대의 지점에서, 더욱 강력한 네트워크와 멘토링을 제공하면서 포트폴리오사에 더 많은 가치를 주고자 노력하는 투자사들도 있다. 드림잇 벤처스(Dreamit Ventures)는 강력한 밀착 프로그램으로 스프린트를 진행하며 스타트업의 파이프라인 및 파트너십 구축을 돕는다. 빌리지 글로벌(Village Global)은 제프 베이조스(아마존 창업자), 빌 게이츠(MS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메타 창업자), 리드 호프만(링크드인 창업자), 에릭 슈미트(전 구글 CEO), 제리 양(야후 창업자) 등을 중심으로 강력한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경험을 전달하고 자금 조달을 넘어선 창업자 네트워크를 제공한다.

이는 기존의 벤처 투자가 DAO의 투자를 배척하는 형태가 아니며, 각각의 장점을 접목할 때 더 큰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DAO를 비롯한 새로운 흐름에 다양한 형태의 많은 자본이 흘러 들어가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이곳에서 기회를 찾고 있다는 점이다. 이 흐름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는 기존의 벤처 투자 산업 또한 스스로 경쟁력 있는 자본이 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하고, 이를 위한 자신의 혁신을 지속해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이용관 ㅣ 블루포인트 대표
한국과학기술원(KAIST) 물리학과를 졸업한 뒤 동대학원에서 물리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2000년 반도체 장비 업체 ‘플라즈마트’를 창업해 2012년 미국 나스닥 상장사인 'MKS'에 300억원에 매각했습니다. 스타트업의 창업과 육성, 엑시트에 이르는 경험을 후배 창업가들에게 조언하던 것이 블루포인트의 시작이 됐습니다. 기술이 지닌 가치와 이를 적합한 시장에 연결하는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약 240개사에 대한 투자와 육성을 활발히 진행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