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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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세계 증시가 일제히 하락하면서 글로벌 투자은행(IB)과 사모펀드(PEF)가 인수합병(M&A)에서 잇따라 재협상을 추진하고 있다. 매수자의 협상력이 증대되면서 가격을 낮추려는 시도가 잦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투자은행(IB)과 사모펀드가 차익을 노린 M&A에서 매수가를 연달아 낮추기 시작했다. 미국 PEF인 토마브라보는 지난달 M&A 거래를 종결하기 직전 소프트웨어 업체 아나플랜에 관한 매수가를 3억달러(약 3913억원) 낮췄다.

전문가들은 토마브라보가 계약 규정 위반을 근거로 아나플랜을 압박했다고 해석했다. 아나플랜이 신입직원들에게 스톡옵션을 제공해서다. 이를 빌미로 인수가를 최초 제안가에서 3.4% 인하하는 데 성공했다. 협상 파기 가능성이 커지자 아나플랜이 울며 겨자 먹기로 인수가 인하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은행 코웬&코의 애런 글릭 이사는 “매수자가 이런 시도를 할 수 있는 이유는 증시가 떨어졌기 때문이다”라며 “잠재적으로 재협상에 돌입하는 투자기관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내에서 매수하는 시가가 협상으로 도출한 매수가보다 저렴하다는 설명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도 이런 추세에 동참했다. 그는 지난 4월 주당 54.2달러에 트위터 지분을 인수한다고 밝혔다. 총 440억달러를 쏟아부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6일 기준 트위터 주가는 주당 38.2달러까지 내려앉았다. 머스크 CEO는 지난달 트위터의 가짜 계정 정보를 분석해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인수를 잠정 보류한다고 선언했다. WSJ은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 계약이 계획대로 성사될지 여전히 미지수라고 보도했다.

트위터를 비롯해 클라우드 컴퓨팅업체 시트릭스, 자동차부품 제조업체 테네코 등도 비슷한 처지다. 엘리엇매니지먼트의 PEF인 에버그린 코스트 캐피탈과 비스타 에쿼티 파트너스는 지난 1월 시트릭스의 기업가치를 165억달러로 책정했다. 지분가치는 주당 104달러로 합의했다. 6일 시트릭스 주가는 주당 99.1달러에 마감했다.

지난 2월 아폴로매니지먼트는 테네코를 71억달러로 평가했다. 현재 테네코의 시가총액은 인수거래 때보다 13% 감소했다. 토마브라보는 지난 4월 소프트웨어 업체 셰일포인트를 주당 65.25달러에 매수하겠다고 합의했다. 셰일포인트의 주가는 6일 주당 63.31달러에 거래됐다. 인수가액보다 약 3%가량 하락한 가격이다.

투자은행 니드햄&코의 수석애널리스트인 알렉스 핸더슨은 “토마브라보의 사례처럼 투자기관이 인수가를 낮추려는 시도가 점점 늘어날 것”이라며 “인수가를 낮추는 투자사가 추가되면 자본시장에 불안감이 증폭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매수가와 시가의 차이를 노리는 개인투자자들에겐 투자계기가 될 거란 해석도 나온다. 계약이 종결되지 않은 곳의 주식을 매수해 인수가격에 매도하며 차익을 얻으라는 주장이다. 글릭 이사는 “현재 M&A 기업의 수익률 차이(스프레드)는 차익거래 투자자들의 목표 수익률보다 높은 수준이다”라며 “이런 추이가 계속되면 차익거래 투자자들의 연간 수익률의 중간값이 4%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스프레드가 증대될수록 M&A 거래가 불발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인수가액을 낮추려 재협상에 돌입해도 합의가 될 거란 보장은 없다. 협상이 실패하면 인수를 포기할 거란 분석이다. 불발 위험에도 인수가액은 개인투자자들에겐 바로미터로 쓰인다. 확정된 가액이라 불확실성이 증시에 비해 낮기 때문이다.

투자자문사 D.A.데이비슨&코의 선임 매니저인 루디 케신저는 “거래 협상에 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합의된 가격으로 M&A가 성사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투자자들에겐 안전자산으로 여겨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