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아드리아나(가운데)가 로트레크(맨앞 왼쪽)를 만나는 장면.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아드리아나(가운데)가 로트레크(맨앞 왼쪽)를 만나는 장면.
“세상에, 정말 아름다워요. 꿈만 같아요. 그림에서만 보던 벨 에포크!”

1920년대 프랑스 파리에 살던 여인 아드리아나 (마리옹 코티아르)는 갑자기 과거로 가게 됩니다. 이름마저 찬란한 ‘벨 에포크(belle epoque·아름다운 시대)’의 파리에 가, 매우 기뻐합니다.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2011)의 한 장면입니다. 아드리아나는 가상의 인물로, 파블로 피카소의 연인으로 나옵니다.

아드리아나가 간 벨 에포크는 프랑스와 프로이센의 전쟁이 끝난 1871년부터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인 1914년까지의 시기를 이릅니다. 당시 다양한 문화와 예술이 꽃 피어 '아름답다'라는 빛나는 수식어가 붙게 된 겁니다.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
영화에서 아드리아나는 벨 에포크의 파리를 상징하는 공간인 카바레 '물랑루즈'에 들어가게 됩니다. 카바레는 당시 예술가들이 모여 노래와 춤을 추고, 연극을 만들기도 하던 선술집이었습니다. 물랑루즈는 파리를 대표하는 카바레였죠.

이곳에서 아드리아나는 그림을 그리고 있던 한 화가를 발견하고 반가워합니다.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1864~1901)입니다. 로트레크는 물랑루즈의 댄서와 손님들을 많이 그린 '물랑루즈의 화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어 로트레크와 함께 있던 두 화가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폴 고갱과 에드가 드가입니다. 아드리아나는 눈앞에 있는 거장들과의 만남에 한껏 들뜨고, 물랑루즈의 매력에 흠뻑 빠집니다.

그리고 1920년대로 돌아가지 않고 과거에 머무르겠다고 선언합니다. 심지어 1920년대 아드리아나에겐 피카소를 비롯해 살바도르 달리, 어니스트 헤밍웨이 등이 함께 있는데 말이죠.

영화를 통해 짐작할 수 있듯, 그만큼 프랑스인과 예술인들에게 벨 에포크는 위대한 시기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당시 전쟁 직후 정치적 혼란이 이어지고 곳곳이 폐허가 됐었는데요. 예술이 깊은 어둠을 물리치고 어느 때보다 찬란한 빛을 만들어냈습니다. 영화에 나온 로트레크, 고갱, 드가를 비롯해 클로드 모네, 에두아르 마네, 폴 세잔 등 인상파 화가들도 벨 에포크를 탄생시킨 주역들입니다.
영화 '물랑루즈'.
영화 '물랑루즈'.
특히 로트레크는 벨 에포크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입니다. 이 시대를 그린 영화엔 짧은 순간이라도 그가 꼭 등장합니다. 영화 '물랑루즈'에도 로트레크가 나오죠. 이 작품에선 남자 주인공 크리스티앙(이완 맥그리거)을 극단에 들어오게 한 후, 물랑루즈에 입성하도록 돕는 인물로 나옵니다.

두 영화를 보시면 로트레크가 누군지 금방 눈치채실 수 있는데요. 그의 키가 152㎝로 작기 때문입니다. 로트레크는 부유한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부모의 근친혼으로 인해 희귀 유전병을 앓았습니다. 그러다 10대 때 크게 다쳐 대퇴골이 부서졌고, 그의 성장도 멈추게 됐습니다.

하지만 '결핍'은 그를 예술의 세계로 이끌었습니다. 승마와 사냥을 좋아했던 로트레크는 다친 후부턴 실내에서 주로 활동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자신을 위로해 주는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됐죠. 로트레크는 훗날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장애가 없었다면 예술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로트레크의 '물랑루즈에서의 춤', 1890, 필라델피아 미술관.
로트레크의 '물랑루즈에서의 춤', 1890, 필라델피아 미술관.
벨 에포크의 화가들은 저마다의 개성과 철학을 드러낼 수 있는 소재와 주제들을 적극적으로 찾았습니다. 모네 등 인상파 화가들은 빛이 내리쬐는 낮의 풍경을 담았고, 로트레크는 밤의 화려함과 어둠에 주목했습니다.

그는 특히 물랑루즈를 사랑했습니다. 물랑루즈에 지정석이 있었을 정도로 늘 이곳을 찾아 그림을 그렸습니다.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들을 포착해 생동감 있게 담아냈죠. 그렇게 그린 드로잉 작품만 4700여 점이 넘습니다.

로트레크의 작품엔 캉캉 춤을 추는 댄서들이 자주 등장하는데요. '미드나잇 인 파리'에도 물랑루즈에서 캉캉 춤을 추는 댄서들이 나옵니다. '물랑루즈'에선 샤틴 역을 맡은 니콜 키드먼이 캉캉 춤을 매혹적으로 춰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로트레크는 물랑루즈의 댄서들뿐 아니라 서커스 단원들, 환락가의 여인들도 그렸습니다. 당시 많은 이들이 천하고 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죠. 하지만 로트레크는 그들에게서 전혀 다른 면을 발견했습니다. "추함은 아름다운 면도 갖고 있다. 아무도 이를 알아채지 못한 곳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이 매우 짜릿하다."
로트레크의 '물랭 가의 응접실', 1894, 툴루즈 로트레크 미술관.
로트레크의 '물랭 가의 응접실', 1894, 툴루즈 로트레크 미술관.
로트레크는 상업 미술과 순수 미술의 경계를 허문 최초의 화가로도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는 460여 점에 달하는 포스터를 그렸는데요. 포스터마다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훗날 다른 화가들에게 큰 영감을 주기도 했습니다.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아드리아나는 로트레크를 만나 "피카소가 정말 존경하는 화가"라고 말하죠. 미국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측에서도 "로트레크가 없었다면 앤디 워홀도 없었다"라는 평가를 내놨습니다.

그런데 로트레크가 혼자였다면, 이 모든 것이 가능했을까요. 실력도 뛰어났지만, 벨 에포크 특유의 문화가 그를 더욱 성장시킨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프랑스 역사학자 메리 매콜리프가 쓴 <벨 에포크, 아름다운 시대>엔 당시 화가들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이들은 밤이 되면 하나둘씩 모여들어 때론 수다를, 때론 치열한 논쟁을 이어갔습니다. 모네는 그 순간을 이렇게 회상했죠. “우리가 나눈 이야기보다 더 흥미진진한 것은 없었다. 줄곧 의견들이 부딪쳤고, 그런 다음엔 항상 새로운 목표 의식과 명료해진 머리를 갖고 집으로 돌아갔다.”

로트레크 역시 영화에 나온 고갱, 드가와 가깝게 지낸 것은 물론 빈센트 반 고흐와 매우 돈독한 사이였습니다. 로트레크는 장애를, 고흐는 내면의 불안을 가지고 있었죠. 이런 결핍을 가진 화가들이 함께 생각을 나누고 예술을 꽃 피웠단 점이 인상적입니다.
로트레크의 '댄서 제인 에브릴이 앉아있는 카페 포스터'.
로트레크의 '댄서 제인 에브릴이 앉아있는 카페 포스터'.
지금 이 시대를 정의한다면, '결핍의 시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염병과 전쟁 등 수많은 위협에 노출되어 있고, 상상력과 낭만은 갈수록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벨 에포크를 살아간 이들도 그때를 결핍의 시대로 느끼진 않았을까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고갱은 이런 말을 합니다. "이 시대는 공허하고 상상력이 없어. 르네상스 시대가 좋았지." 그러나 서로가 함께였기에 그 시대는 결핍의 시대로 끝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각자의 결핍 이면에 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기, 치열하게 부딪히고 토론하며 상대의 머리와 가슴 속을 채워주기. 이 두 가지를 해낸다면, 결핍의 오늘은 곧 벨 에포크가 될 겁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