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천편일률적으로 진료한다는 걸 알았다면 테오를 맡기지 않았을 겁니다.”

지난달 18일 K모 씨는 만 9세 포메라니안 ‘테오’를 데리고 서울의 A동물병원을 찾았습니다. 평소 테오의 몸무게가 1.4㎏로 덩치도 작았기에 마취에 대한 두려움이 컸습니다. 반려견들이 흔하게 받는 슬개골 수술조차 테오에게는 시키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테오가 노령견이 되면서 이곳저곳 아픈 곳이 생겨 치과 검진을 더 이상 늦출 수 없었습니다. 하루 2마리만 예약을 받고 ‘반려동물 치과 특화 진료’를 한다는 A병원에 갔습니다. 많게는 수 백만 원으로 국내 최고 수준의 수가를 받는 곳이지만 그만큼 아이를 세밀하게 봐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좋아하는 장난감과 사진 찍은 테오의 모습 / 사진=테오 보호자 제공
좋아하는 장난감과 사진 찍은 테오의 모습 / 사진=테오 보호자 제공
‘마취 전 검사→마취 전 주사→수면 유도…’. K씨는 치과 진료 안내서를 보면서 검진이 어떻게 진행될지에 대한 설명을 3분 동안 들었습니다. 병원 측은 K씨에게 혈액·흉부 방사선 검사를 한 뒤 30분 이내로 수액을 맞고 수면 유도를 통해 마취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호흡 마취 전 반려견의 몸 속에 프로포폴 약물을 주입해 수면 유도를 한다는 설명은 듣지 못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최악의 경우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언급도 없었습니다. 안내서에는 ‘원치 않는 부작용, 후유증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설명만 간략히 적혀 있었습니다.
테오의 치과 진료 안내문 / 사진=테오 보호자 제공
테오의 치과 진료 안내문 / 사진=테오 보호자 제공
“마취는 정말 안전한가요?”

K씨는 상담을 하면서 원장 B씨에게 마취 위험성을 재차 물었습니다. 원장은 “혈액검사 소견 결과 건강하고 문제없다”면서 “안전한 호흡 마취이니 걱정 마시라”고 했습니다. 다시 한번 테오 보호자는 “오늘은 검진차 왔지만 나이가 9살이고 1.4㎏이라 마취가 부담되는데 결례지만 혹시 정말로 무사고시냐”고 거듭 물었습니다. B씨는 “테오보다 작은 아이도 하고 13살 심장병 걸린 애들도 다 한다”면서 “여태껏 무사고니 걱정 말라”고 말했습니다.

K씨는 자신감으로 가득찬 B원장의 말을 믿고 테오를 맡겼습니다. 하지만 테오는 고지도 못 받은 프로포폴을 주입한 후 30초 만에 무지개다리를 건넜습니다. K씨는 눈앞에서 죽은 테오를 보고 오열했습니다.

끝나지 않은 공방

“악연의 시작일 지도 모르지만, 이 사람 000(원장 이름)을 바치겠다. (지위를 언급하며) 사람 하나 얻었다고 생각하시라.”

K씨가 가족들과 함께 병원을 찾았을 때 원장 B씨에게 들은 말입니다. K씨 가족들은 사고 직후 테오의 죽음에 대해 진솔한 사과도 듣지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과실조차 인정하지도 않았습니다. K씨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며 사건이 공론화돼 여론이 들끓자 그제서야 병원 측은 장문의 사과문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렸습니다.

K씨는 동물병원 3곳과 서울 소재 수의학과 교수 2명에게 테오 진료에 대한 자문을 받았습니다. 공통으로 들었던 이야기는 “만 9세, 1.4㎏의 몸집, 초소형 단두종견인 테오에게 프로포폴을 주입한 것이 무호흡 사망의 위험이 있는 진료방식”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서울 모 동물병원의 C원장은 “테오의 혈액검사지를 봤을 때 피검사에서 콩팥 건강을 보여주는 ‘BUN 수치’가 비이상적으로 높았다”면서 “콩팥 신부전이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상황에서 프로포풀을 투약해 검진을 강행한 것은 의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테오가 병원에 있던 상황에 대해 원장 B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마취 전 프로포폴을 주입하고 30초 만에 호흡 상태가 불안정해졌다”면서 “프로포폴 투여가 직접적인 사망의 원인이 됐는지, 약물로 인해 기존 질병이 촉발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마취 과정에서 테오가 죽었다는 과실은 인정한다”고 말했습니다. 약물 사용 미고지에 관해 B씨는 “호흡 마취 전 수면 유도 과정에서 프로포폴을 쓴다고 말하지 않은 것은 제 불찰”이라고 했습니다. 또 사과가 늦어졌던 이유는 “보상 얘기를 먼저 꺼내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조심스럽게 접근을 했던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중대진료 서면 동의는 이제서야 의무화

반려동물 중대진료 전 보호자 서면 동의를 의무로 받아야 하는 법은 이제서야 공포됐습니다. 지난 4일 농림수산식품부는 이런 내용을 담은 개정 수의사법 시행령이 5일 공포된다고 밝혔습니다.
중대진료 동의서 양식 / 사진=대한수의사회 제공
중대진료 동의서 양식 / 사진=대한수의사회 제공
모든 동물병원은 수술을 비롯한 중대진료를 하기 전에 동물 보호자에게 진단명, 동물에게 발생하거나 발생 가능한 증상의 진단명, 진료의 필요성과 방법, 예상 후유증 또는 부작용 등을 말로 설명해야 합니다. 중대진료의 범위는 전신마취를 동반하는 내부 장기‧뼈‧관절 수술과 수혈 등이 해당됩니다. 동물 보호자는 수의사로부터 설명을 들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서명을 해야 합니다. 또한 설명은 구두로 하고 동물 소유자의 동의를 받은 후 동의서는 1년간 보존해야 합니다.

이를 위반하면 최초 과태료 30만원이 부과되고, 2차 위반 시 60만원, 3차 위반 시 90만원이 부과됩니다. 다만 동의 절차 진행으로 인해 진료가 지체돼 동물의 생명이 위험해질 우려가 있으면 먼저 진료를 한 뒤 사후에 설명하고 동의를 받을 수 있습니다.
‘4년차 뽀솜이 이모’ 멍냥기자입니다. 전체 가구의 30%가 반려동물을 키우는 시대. 전국 1448만명 ‘펫밀리(Pet+Family)’들을 위해 양질의 정보를 담겠습니다. 멍냥이들이 입고, 먹고, 살아가는 의식주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다룹니다.
김성희 기자 sung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