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방망이 처벌이 대부분인 국내와 달리 해외 주요 선진국에선 횡령범에게 엄격한 처벌 잣대를 적용한다. 미국에선 초범이라도 빼돌린 금액 규모 등에 따라 징역 30년형도 받을 수 있다.

8일 미국 연방 형선고위원회의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횡령범죄는 43개로 이뤄진 범죄 단계 중 7단계에 해당한다. 일단 범행 자체만으로 6개월 이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여기에 횡령금액과 피해자 수, 범행 수법, 과거 범죄 이력, 범행 여파 수준 등에 따라 형량이 가중된다. 초범이더라도 횡령금액이 1억5000만달러(약 1900억원) 이상 2억5000만달러(약 3200억원) 미만이면 보통 징역 9~11년형을 선고받는다.

벌금은 적게는 5000달러, 많게는 수백만달러에 달할 수 있다. 이 가이드라인은 반드시 지켜야 할 필요는 없지만, 미국 연방판사의 절반 이상이 따르고 있을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

정부 혹은 정부 산하기관에서 벌어진 횡령범죄에 대한 처벌 기준도 촘촘하게 구축돼 있다. 보통 횡령금액이 1000달러 미만이면 경범죄로 분류돼 1년 이하 징역형이나 10만달러 이하 과태료를 부과받는다. 1000달러 이상이면 중범죄로 여겨져 더욱 무거운 형사처벌을 받는다. 징역형은 최장 30년까지 가능하며 과태료는 최대 25만달러까지 부과할 수 있다. 미국 검사 출신 변호사는 “만약 횡령을 위해 신분 도용 등 다른 범죄까지 추가로 저질렀다면 형량은 더 길어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은행 직원 및 조사관의 횡령은 연방법상 특정 범죄로 분류돼 더 엄격하게 처벌받는다. 징역형은 최장 30년, 벌금형은 최대 100만달러까지 가능하다. 두 가지 처벌을 동시에 적용할 수도 있다.

금융 선진국인 싱가포르에서도 횡령에 대한 처벌이 엄격하다. 횡령죄가 별도로 정의돼 있진 않지만, 형법상 크게 배임으로 분류돼 기본적으로 7년 이하 징역이나 벌금, 혹은 두 가지 처벌을 동시에 받게 돼 있다. 횡령 규모와 조직화 여부, 공공이익 침해 정도, 범죄 기간 등에 따라 형량은 징역 20년까지 무거워질 수도 있다. 조형찬 법무법인 바른외국변호사(싱가포르)는 “특히 횡령을 저지른 자가 공무원과 은행원, 기업 임원 등 사회에서 신뢰받는 지위에 있으면 처벌 수위가 강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김진성/최진석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