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남극의 겨울에서 처음 살아돌아온 17명 탐험가의 이야기
1897년, 벨기에 벨지카호의 남극 원정에는 19명의 선원이 함께했다. 지질학자와 동물학자 등을 태운 벨지카호는 남미 끝자락 너머 미지의 세계로 탐험을 떠났다. 2년여의 탐사에서 이들은 엄청난 양의 식물, 동물, 지질학 데이터를 수집하고 돌아왔다. 작업을 마무리하는 데만 40년이 걸릴 정도로 이들이 가져온 표본의 양은 방대했다.

《미쳐버린 배》는 최초의 남극 과학 탐사에 관한 논픽션이다. 1897~1898년 벨지카호의 탐험가들은 과학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당시 남극을 다녀온 일부 선원이 남긴 일기와 일지는 지금도 귀중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유럽사를 전공한 저자 줄리언 생크턴은 잡지 ‘디파처스’의 선임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벨지카호는 다양한 과학적 유산을 남겼다. 현재 왕립 벨기에 자연과학연구소에는 벨지카호의 기록물이 다수 보관돼 있다. 황제펭귄 표본을 비롯해 젠투펭귄, 아델리펭귄, 물범 뼈와 심해어, 수백 종의 식물과 동물 등 표본은 기존 과학계에서 볼 수 없었던 것들이었다.

이들은 남극 대륙을 둘러싼 국제협력의 표준도 수립했다. ‘남극 대륙에선 어떠한 군사적 활동도 할 수 없다’는 내용의 남극 조약을 이끌어내는 데 기여했다. 이 조약은 ‘모든 형태의 착취로부터 남극의 동물과 자원을 보호한다’는 마드리드 의정서의 토대가 됐다. 벨지카호는 처음 목표로 세운 위도 75도 부근의 ‘남자극점’에 도달하는 데는 실패했다. 그러나 해도에 새로운 땅을 그려넣었을 뿐 아니라 역사상 최초로 남극의 겨울에서 살아 돌아오는 업적을 세웠다.

책은 당시 탐험가들이 남긴 과학적 성과에만 초점을 맞추지는 않는다. 이들의 탐험정신과 명예욕, 과도한 승부욕, 괴혈병에 걸려 창백하게 무너져가는 모습 등 인간 본성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선원 19명 중 한 명은 바다에 빠져 죽었고, 다른 한 명은 배에서 몸져누워 죽었다. 저자는 살아남은 17명의 선원이 귀국 후 어떤 삶을 살았는지도 추적한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