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 ‘물랭루주에서의 춤’(1890).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 ‘물랭루주에서의 춤’(1890).
“세상에, 정말 아름다워요. 꿈만 같아요. 그림에서만 보던 벨 에포크(belle epoque·아름다운 시대)!”

1920년대 프랑스 파리에 살던 아드리아나(마리옹 코티아르 분)는 갑자기 과거로 가게 된다. 이름마저 찬란한 ‘벨 에포크’의 파리다.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2011)의 한 장면이다. 아드리아나는 가상의 인물로, 파블로 피카소의 연인으로 나온다. 그가 찾아간 벨 에포크는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이 끝난 1871년부터 1차 세계대전 발발 전인 1914년까지다. 다양한 문화와 예술이 꽃피어 ‘아름답다’라는 빛나는 수식어가 붙었다.

아드리아나 (왼쪽·마리옹 코티아르)와 길(오웰 윌슨)
아드리아나 (왼쪽·마리옹 코티아르)와 길(오웰 윌슨)
영화에서 아드리아나는 벨 에포크의 파리를 상징하는 공간인 카바레 ‘물랭루주’에 들어간다. 카바레는 당시 예술가들이 모여 노래와 춤을 추고, 연극도 만드는 선술집이었다. 이곳에서 아드리아나는 한 화가를 발견하고 반가워한다.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1864~1901)다.

로트레크는 물랭루주의 댄서와 손님들을 많이 그린 ‘물랭루주의 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영화 ‘물랑루즈’에서도 남자 주인공 크리스티앙(이완 맥그리거 분)을 극단에 들어오게 한 뒤 물랭루주 입성을 돕는 인물로 나온다.

로트레크를 예술로 이끈 것은 ‘결핍’이었다. 그의 키는 152㎝에 불과했다. 10대 때 크게 다쳐 성장이 멈춘 탓이다. 후유증으로 인해 그는 실내에서 주로 활동해야 했고, 그러다 그림으로 위로받게 됐다.

로트레크는 물랭루주의 풍경을 자주 그렸다. 물랭루주가 지정석을 마련해줄 정도였다. 그는 물랭루주의 댄서뿐 아니라 서커스 단원, 환락가의 여인도 그렸다. 당시 많은 이가 천하고 추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추한 것에도 아름다운 면이 있다. 아무도 이를 알아채지 못한 곳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은 정말 짜릿하다.”

벨 에포크 특유의 문화는 그를 더욱 성장시켰다. 당시 예술가들은 밤이 되면 하나둘씩 모여들어 치열하게 논쟁했다. 로트레크도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 등과 함께 예술에 대한 생각을 나눴다. 로트레크는 장애를, 고흐는 내면의 불안을 갖고 있었다. 결핍을 가진 화가들이 함께 생각을 공유하면서 예술을 꽃피운 셈이다.

많은 사람은 우리가 사는 지금 이때를 ‘결핍의 시대’로 정의한다. 전염병(코로나19), 전쟁(러시아·우크라이나전)과 같은 극도의 공포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저급한 문화가 우리의 상상력과 낭만을 앗아가고 있어서다.

이런 결핍의 시대를 어떻게 벨 에포크로 바꿀 수 있을까. 힌트는 로트레크가 건넸다. 그가 추함에서 아름다움을 찾은 것처럼 우리 모두의 결핍 이면에는 아름다움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 그리고 로트레크가 고흐, 고갱과 그랬듯이 주변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며 서로의 가슴을 채워주는 것. 이 두 가지만 지킨다면 우리 후손들은 지금 이때를 벨 에포크로 부를 것이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