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파' 와해로 온건파 기시다에 힘 실려…日 우경화 약해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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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총리 물러난 아베
마지막까지 영향력 행사
기시다, 최대파벌 그늘 벗어나
당내 취약했던 입지 강화 가능
앞으로 3년간 큰 선거도 없어
안정적인 국정운영 가능해져
한·일 관계도 새 국면 맞을 듯
마지막까지 영향력 행사
기시다, 최대파벌 그늘 벗어나
당내 취약했던 입지 강화 가능
앞으로 3년간 큰 선거도 없어
안정적인 국정운영 가능해져
한·일 관계도 새 국면 맞을 듯
일본 국회 참의원(상원) 선거에서 집권 여당인 자민당의 압승으로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장기 집권의 발판을 마련하게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자민당 최대 파벌을 이끌던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사망으로 정권 역학관계가 급변해 정치·경제 등 여러 분야에서 대대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강경 우파인 아베파의 영향력이 약해지고 온건파인 기시다 총리가 더욱 적극적으로 자신의 색깔을 드러낼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일 관계도 새로운 국면을 맞을 전망이다.
기시다 내각은 60~70%의 높은 지지율을 꾸준히 유지했다. 그런데도 일본 정계가 기시다의 장기 집권을 쉽사리 전망하지 못한 이유는 취약한 당내 지지 기반 때문이었다. 그가 이끄는 ‘기시다파’는 자민당 내 네 번째 파벌이다. 소속 의원은 약 45명으로 자민당 전체 의원(262명)의 6분의 1에 불과하다. 아베 전 총리가 회장인 최대 계파 ‘아베파’(소속 의원 약 95명)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아베 전 총리가 다음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다른 후보를 밀면 총리가 바뀔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아베 전 총리는 2020년 총리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적극적으로 정책에 관여해 왔다. 국가 부채 증가를 걱정하지 말고 보다 적극적인 금융완화·재정확장 정책을 위해 국채 대량 발행을 주문했다. 일본의 핵 보유와 군비 확대를 주장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아베의 영향력을 의식해 일본 정부 부처 관료들은 총리 퇴임 이후에도 그의 사무실을 부지런히 드나들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전했다.
정부의 재정적자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기시다 총리는 경제재정 기본방침에 ‘국가의 재정수지를 5년 이내에 흑자로 전환하겠다’고 시기를 명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재정적자를 감수해야 한다는 아베의 입김에 밀려 ‘5년’이라는 시기를 막판에 삭제했다. 반대로 ‘방위비를 국내총생산(GDP)의 2%까지 늘린다’는 대목에는 당초에 없던 ‘5년 이내’라는 시기를 집어넣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다.
아베의 사망으로 그가 사실상 결정권을 쥐고 있던 당내 역학구도는 바뀌게 됐다. 아베파에는 소속 의원 다수의 지지를 받는 후계자가 없다. 1985년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가 뇌경색으로 쓰러졌을 때 당시 자민당 최대 파벌이었던 ‘다나카파’도 후계자 부재로 분열한 전례가 있다. 강경 우파인 아베파의 영향력이 약해지고 온건파인 기시다 총리의 영향력이 커질 것이란 예상이 나오는 이유다.
아베 정권의 정책을 거의 그대로 계승해온 일본의 중장기 정책 축이 바뀔 가능성도 있다. 헌법 개정이나 적 기지 공격 능력 보유와 같은 우경화 정책이 다소 완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조심스레 나온다. 아베 전 총리는 개헌론의 대표주자였다.
한·일 관계의 변화도 예상된다. 기시다 총리는 외무상 시절인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주도했다. 도쿄 외교 소식통은 “지난 정부가 위안부 합의를 지키지 않은 데 대해 기시다 총리가 얼마나 반감을 갖고 있느냐가 관계 개선의 변수”라고 말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기시다, 취약한 당내 기반 강화
작년 10월 취임 직후 치러진 중의원(하원) 선거에 이어 참의원 선거에서도 승리함에 따라 기시다 총리가 단명 정권으로 끝날 가능성은 사라졌다는 분석이 많다. 앞으로 3년 동안은 큰 선거가 없어 안정적인 국정 운영의 기반이 마련됐기 때문이다.기시다 내각은 60~70%의 높은 지지율을 꾸준히 유지했다. 그런데도 일본 정계가 기시다의 장기 집권을 쉽사리 전망하지 못한 이유는 취약한 당내 지지 기반 때문이었다. 그가 이끄는 ‘기시다파’는 자민당 내 네 번째 파벌이다. 소속 의원은 약 45명으로 자민당 전체 의원(262명)의 6분의 1에 불과하다. 아베 전 총리가 회장인 최대 계파 ‘아베파’(소속 의원 약 95명)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아베 전 총리가 다음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다른 후보를 밀면 총리가 바뀔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아베 전 총리는 2020년 총리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적극적으로 정책에 관여해 왔다. 국가 부채 증가를 걱정하지 말고 보다 적극적인 금융완화·재정확장 정책을 위해 국채 대량 발행을 주문했다. 일본의 핵 보유와 군비 확대를 주장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아베의 영향력을 의식해 일본 정부 부처 관료들은 총리 퇴임 이후에도 그의 사무실을 부지런히 드나들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전했다.
아베 사망으로 자민당 구도 변화
기시다 총리가 자신의 간판 정책인 ‘새로운 자본주의’ 방향을 대폭 수정한 데서도 아베 전 총리의 여전한 영향력이 입증된다. 지난달 1일 일본 정부는 새로운 자본주의의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담은 경제재정 운용과 개혁의 기본 방침(호네후토 방침)을 발표했다.정부의 재정적자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기시다 총리는 경제재정 기본방침에 ‘국가의 재정수지를 5년 이내에 흑자로 전환하겠다’고 시기를 명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재정적자를 감수해야 한다는 아베의 입김에 밀려 ‘5년’이라는 시기를 막판에 삭제했다. 반대로 ‘방위비를 국내총생산(GDP)의 2%까지 늘린다’는 대목에는 당초에 없던 ‘5년 이내’라는 시기를 집어넣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다.
아베의 사망으로 그가 사실상 결정권을 쥐고 있던 당내 역학구도는 바뀌게 됐다. 아베파에는 소속 의원 다수의 지지를 받는 후계자가 없다. 1985년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가 뇌경색으로 쓰러졌을 때 당시 자민당 최대 파벌이었던 ‘다나카파’도 후계자 부재로 분열한 전례가 있다. 강경 우파인 아베파의 영향력이 약해지고 온건파인 기시다 총리의 영향력이 커질 것이란 예상이 나오는 이유다.
아베 정권의 정책을 거의 그대로 계승해온 일본의 중장기 정책 축이 바뀔 가능성도 있다. 헌법 개정이나 적 기지 공격 능력 보유와 같은 우경화 정책이 다소 완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조심스레 나온다. 아베 전 총리는 개헌론의 대표주자였다.
한·일 관계의 변화도 예상된다. 기시다 총리는 외무상 시절인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주도했다. 도쿄 외교 소식통은 “지난 정부가 위안부 합의를 지키지 않은 데 대해 기시다 총리가 얼마나 반감을 갖고 있느냐가 관계 개선의 변수”라고 말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