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당선이 확실시되자 제 휴대폰이 폭발할 정도로 문의 전화가 빗발쳤어요."

미국 마이애미 부동산 기업 PMG레지덴셜의 한 임원이 10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전한 말이다. 콜롬비아에서 사상 처음으로 좌파 대통령이 탄생한 이후 "미국 부동산 투자를 알아보고 싶다"는 콜롬비아인들의 연락이 급증했다는 설명이다. 지난달 콜롬비아에서는 좌파연합 '역사적 조약' 소속의 구스타보 페트로 후보(사진)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내달 7일 정식 취임한다.

FT는 "최근 몇년 새 중남미 국가에서 좌파 정권이 재집권함에 따라 중남미 부유층을 중심으로 자본 이탈 추세가 가속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남미 국가들과 지리적으로 근접한 미국 남부 지역의 부동산 업체 관계자들은 "콜롬비아뿐만이 아니다. 칠레, 페루 등에서도 좌파 정부가 들어선 이후 부동산 투자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은 단순 투자 목적 외에도 실거주를 위해 부동산 구입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이민까지 염두에 둔 조치라는 분석이다.

특히 콜롬비아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집권에 성공한 좌파 세력은 중남미 부유층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콜롬비아는 중남미의 대표적인 친미 국가로 분류돼 온 나라다. 그간 콜롬비아의 우파 정치인들은 미국의 중남미 정책에 보조를 맞춰왔다. 그러나 페트로 당선인이 집권에 성공하면서 '중남미 우파의 보루'인 콜롬비아마저 강경 좌파 정책으로 급선회할 것이란 우려가 번지고 있다.

실제로 페트로 당선인이 후보 시절 내건 공약은 부유층과 기업들을 겨냥하고 있다. 그는 상위 4000명의 콜롬비아 부자들에게 부유세를 새로 부과하고, 부유층에 매기는 개인소득세를 인상하겠다고 공약했다. 기업이 거둬들인 영업이익의 70%를 배당금으로 토해내는 방안도 도입하기로 했다.

중남미에 불고 있는 '핑크 타이드(Pink Tide)' 바람은 오는 10월 브라질 대선을 기점으로 더욱 확실해질 전망이다. 핑크 타이드란 1995~2010년 중남미를 휩쓴 좌파 정당의 연이은 집권기를 뜻한다. 최근 2년 새 중남미 주요 6개국(아르헨티나와 멕시코, 칠레, 페루, 콜롬비아, 브라질) 가운데 브라질을 제외한 5개국에서 정권이 우파에서 좌파로 교체됐다.

극우 성향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집권해 있는 브라질도 10월 대선에선 좌파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전 대통령의 정권 탈환 가능성이 높다. 룰라 전 대통령은 주요 여론조사에서 40%대의 안정적인 지지율로 줄곧 1위를 지키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등은 "한때 중남미를 휩쓸었던 핑크 타이드가 이번엔 더 광범위하게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