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구매 후결제(BNPL) 업계의 선두주자로 꼽힌 스웨덴 핀테크 클라르나의 기업가치가 폭락했다. 전 세계 중앙은행들의 긴축 움직임에 시중 유동성이 줄어들면서다. 그동안 고평가 돈잔치를 벌였던 핀테크들에 암흑기가 도래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신규 자본금 조달 과정에서 클라르나의 기업가치가 67억달러(약 8조8000억원) 수준으로 평가됐다"고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클라르나가 이번 라운드에 유치한 투자금은 8억달러다. 이는 지난해 일본 소프트뱅크를 주축으로 한 6억3900만달러 규모 펀딩 라운드에서 460억달러(약 60조4000억원)에 달하는 몸값을 인정받은 것과 비교해 85% 가까이 급락한 수치다.

CNBC는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중앙은행이 치솟는 인플레이션에 대응해 공격적 긴축에 나섬에 따라 경기침체 우려가 퍼지고 있다"며 "이에 소비자들이 지출 규모를 줄이면서 BNPL 시장이 매력을 잃고 있는 것도 클라르나의 기업가치가 대폭 깎인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애플 페이 레이터를 출시한 애플을 비롯해 페이팔, 어펌 등 빅테크(대형 기술기업)와 전통 은행들이 BNPL 시장에 뛰어들면서 업계 경쟁도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FT는 "클라르나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상장 경쟁사 어펌의 주가가 지난해 11월 최고점 대비 90% 폭락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고 전했다. 클라르나는 앞서 5월엔 250억달러 기업가치를 토대로 신규 투자자를 모집하려 했지만 실패한 바 있다. 펀딩이 좌초된 직후 클라르나는 직원을 10% 감원하는 등 사업 재정비에 나서야 했다. 세바스티안 시미아트코스키 클라르나 최고경영자(CEO)는 "올해는 정말 격동의 한 해"라면서 "어려운 환경 속에도 이번에 추가 자본 확보에 성공했다는 것은 그래도 클라르나가 탄탄하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