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新냉전기, '대체불가 기술'이 생존 좌우
그야말로 격동의 시대다. 인류 생존과 세계 경제를 이토록 위협한 시기가 있었던가? 지긋지긋한 코로나와의 전쟁과 돌이킬 수 없어 보이는 기후변화에 유례없는 고물가와 고금리는 우리 모두를 힘들게 한다. 장기전에 돌입한 미·중 마찰은 악화해 신냉전으로 해석될 만큼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난번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은 중요한 외교적 의미가 있는 한·미·일 정상 3자 회담을 이뤄냈다. NATO는 중국을 안보에 도전하는 사실상 ‘위협’으로 정했고 그 진영 대결에 한국도 참여하게 됐다. 이에 중국은 한국과 일본에 좌시하지 않을 것임을 경고했다.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그 해답은 ‘실리외교’와 ‘성장’에 무게를 둔 경제안보 정책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은 과거처럼 중국에만 의존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경제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소홀히 할 국가는 아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對)중국 수출은 25.3%(211조원)다. 게다가 수입 의존도는 24.3%(180조원)이고, 공급망에서도 중국을 대체할 지역을 단기간에 찾기 어렵다. 실리외교는 약소국만의 전략이 아니다. 중국은 NATO 회의에 참석한 한국과 일본을 분리하고, 우리를 중요한 이웃국이라고 했고, 일본도 중국이 주도하는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에 가입하면서 미국에 양해를 구했다. 미국도 중국도 우리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나라를 이롭게 하는 실리외교의 수완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다. 정부는 중용(中庸)적 외교를 통해 안정과 이로움의 분명한 메시지를 줘야 한다.

경제안보는 ‘경제’와 ‘안보’라는 양면이 있고, 양자를 동체로 다룰 때 신냉전 속에서 성공할 수 있다. 그런데 현재 정책은 ‘경제’보다 ‘안보’에 치우쳐 있거나 양자를 별개로 취급하는 듯하다. 반도체 부족이나 요소수 사태와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공급망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필수적이지만, 공급망 대책이 경제안보의 전부인 것처럼 방어적 안보정책에만 치중한 것이 아닌지 되짚어봐야 한다. 수비적이고 소극적 개념인 ‘안보’보다 공격적이고 동태적인 ‘경제성장’ 정책에 중점을 두는 것이 필요하다.

신냉전 속 성장을 위해서는 공급망 자체보다는 그것에 영향을 줄 핵심 기술 확보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기업은 자신이 처한 상황과 경영전략에 따라 효율적이고 최적화한 공급망을 이미 갖추고 있다. 정부의 지나친 개입은 자칫 기업의 대처를 어렵게 할 수도 있다. 삼성전자는 3나노 기술을 보유한 세계 최고 파운드리 기업이지만 제조장비와 설계 소프트웨어는 미국에서, 그 재료는 일본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핵심 기술 전략은 반드시 특허 분석에 기반을 두고 기존 특허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설계해야 하고, 우리만 가질 수 있는 대체불가 기술을 확보하는 데 목표를 세워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보다는 기업이 그 중심에서 주도하는 민관 협력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에 한국이 참여하는 것에 중국은 불편한 속내를 내비친다. 그래서 중국의 경제 보복이 염려될 수도 있다. 이제 시작 단계에 있는 IPEF 14개 참여국 중 한국만을 대상으로 보복하기에는 명분이 부족하고, 시진핑 주석의 3연임과 자국 정세 안정을 도모해야 하는 부담도 있다. 지나 레이몬도 미국 상무장관은 중국 최대 반도체 업체 SMIC가 러시아에 반도체를 공급하는 것으로 드러나면 폐쇄하겠다고 경고한 바 있어, 중국이 보복 시에는 미국의 개입이 불가피해 보인다.

신냉전은 한국 경제의 위기를 전환할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한국은 세계 경제 질서의 새판 짜기에 주도적으로 참여해 우리의 이해를 최대한 반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에 경제안보 정책은 대립과 갈등이 아니라 실리와 성장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줘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