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기업 설비투자 규모가 작년 상반기에 비해 35.2%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영 환경이 불투명해진 탓이다. 고금리·고물가·고환율 등 ‘3고(高)’에 직면한 기업들의 투자심리가 빠르게 얼어붙고 있다. 기업 조달금리가 1년 새 두 배가량 뜀박질하면서 투자비 조달 여건도 팍팍해졌다.

LG이노텍만 조단위 투자

기업들 'R공포'…상반기 설비투자 35% 급감
13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상반기 시설투자·유형자산취득을 공시한 기업은 LG이노텍을 비롯한 87곳으로 투자금액은 8조3032억원으로 집계됐다. 작년 상반기(12조8136억원)에 비해 35.2% 급감했다. 이 같은 ‘투자절벽’ 상황에서도 LG이노텍 LG에너지솔루션 포스코케미칼 HMM 팬오션 등은 3000억원이 넘는 투자에 나서 눈길을 끌었다.

LG이노텍이 유일한 ‘조(兆) 단위’ 투자 기업이었다. 반도체 기판(FC-BGA)과 카메라모듈 설비 구축에 1조7525억원을 투자한다고 공시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상반기에도 5478억원의 설비투자를 공시하는 등 매년 수천억원대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애플 아이폰에 들어가는 카메라 모듈의 70%가량을 납품하는 이 회사는 공급을 늘리기 위해 생산설비를 확충하고 있다. 배터리업체 투자 규모도 상당했다. LG에너지솔루션이 배터리 생산설비에 5818억원을 투자한다고 공시한 데 이어 포스코케미칼은 양극재 설비 구축에 3512억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선복(선박 적재 용량) 부족 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해운사의 선박 투자도 잇따랐다. HMM과 팬오션은 선박 매입에 각각 5249억원, 5276억원을 쓰기로 했다. 현대글로비스도 지난 2월 천연가스 운반선 1척을 2541억원에 매입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전체 투자액은 반도체 설비, 데이터센터 등에 고르게 투자한 작년에 비해서는 큰 폭으로 줄었다. 설비투자 감소 흐름은 경제지표로도 나타난다. 한국은행은 지난 5월 내놓은 경제전망보고서에서 올해 설비투자 증가율 전망치를 종전 2.2%에서 -1.5%로 하향 조정했다.

치솟는 금리…투자비 조달시장 냉각

설비투자가 큰 폭으로 감소한 것은 기업 수출·판매실적이 꺾인 것과 맞물린다. 원자재 가격이 치솟으면서 올 들어 지난 10일까지 무역수지는 158억8400만달러 적자로 집계됐다. 국가 전체적으로 무역으로 손해를 봤다는 의미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136억9000만달러 흑자였다.

여기에 내수 씀씀이도 줄었다. 5월 소매판매액지수는 119.6(2015년 100 기준)으로 전달에 비해 0.1% 하락했다. 석 달 연속 내림세다. 치솟는 물가에 대응해 가계가 먹고 마시는 필수재에만 지갑을 열고, TV 등 값비싼 내구재에 쓰는 돈은 줄인 결과다. 치솟는 금리도 투자를 억누르는 변수로 작용했다. 시장금리가 빠르게 올라 투자자금 조달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이날 회사채 AA-등급 금리(무보증 3년물)는 연 4.076%에 거래됐다. 작년 최저치(2021년 8월 19일·연 1.790%)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연 1.75%에서 연 2.25%로 0.5%포인트 올린 만큼 회사채 금리 오름세는 이어질 전망이다.

금리가 뛰면서 올해 상반기 회사채 순발행액(발행액에서 상환액을 제외한 금액)은 -3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작년 상반기 순발행액(13조6000억원)과 비교해 마이너스로 전환했다. 순발행액이 마이너스라는 것은 회사채로 조달한 금액보다 만기가 도래해 상환한 금액이 크다는 뜻이다. 기업들의 자금조달 여건이 나빠진 만큼 하반기 기업의 투자도 위축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