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장일치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운데)가 13일 서울 태평로 한은 본관에서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한은은 이날 기준금리를 연 1.75%에서 연 2.25%로 0.5%포인트 인상했다. /사진공동취재단
< 만장일치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운데)가 13일 서울 태평로 한은 본관에서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한은은 이날 기준금리를 연 1.75%에서 연 2.25%로 0.5%포인트 인상했다. /사진공동취재단
한국은행이 13일 사상 처음으로 빅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밟은 것은 고물가와 그에 따른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꺾기 위한 극약처방으로 분석된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린 뒤 기자간담회에서 “기준금리를 한두 번 더 올려도 긴축이 아니다”며 “당분간 0.25%포인트씩 점진적으로 인상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해 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연말 기준금리를 연 2.75~3.0%로 보는 시장 기대에 대해서도 “현재로선 합리적”이라고 했다.

○가보지 않은 길 들어선 한은

이 총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한 번에 0.5%포인트 이상을 인하한 적은 있지만 0.5%포인트를 올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입을 뗐다. 한은이 ‘가보지 않은 길’로 들어선 것은 이미 고물가가 굳어질 조짐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6%로 외환위기 때인 1998년 11월(6.8%) 후 2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 3월 4%대에 진입한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불과 두 달 뒤 5%를 넘어섰고, 또다시 한 달 만에 6%대로 치솟았다.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인플레이션율과 기대인플레이션율(일반인의 1년 뒤 물가 전망치) 모두 4%에 근접했다. 지난달 기대인플레이션율(3.9%) 상승폭은 0.6%포인트로,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08년 이후 최고치였다. 기대인플레이션이 높으면 물가 상승세가 더 가팔라질 수 있다. 금융통화위원회는 이날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서 “소비자 물가는 당분간 6%를 웃도는 높은 오름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이며 올해 물가 상승률도 5월 전망치(4.5%)를 크게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 총재가 빅스텝의 취지로 ‘선제적 대응’을 강조한 이유다.

이 총재는 “금리를 통해 물가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시그널을 주면 개별 경제 주체가 각자의 노력으로 최대한 가격이나 임금 상승을 억제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 과정에서 1981~1982년 폴 볼커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 시절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연 20%까지 올리면서 미국이 겪은 경기 침체를 일컫는 ‘볼커 불황(Volcker depression)’을 언급하기도 했다.

○경기 하방 위험도 지적

미국과의 금리역전이 사실상 예정돼 있는 것도 한은이 이번에 빅스텝을 단행한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미국은 금리 상단 기준)는 연 1.75%로 같았지만, 이날 한은의 빅스텝으로 0.5%포인트 차이로 벌어졌다. 하지만 미국은 지난달 28년 만에 자이언트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단행한 데 이어 오는 26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또 한 번 자이언트스텝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이 총재는 “미국이 금리를 큰 폭으로 인상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도 “금리역전으로 인한 시장의 영향을 보고 판단할 문제이지 금리역전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고 밝혔다.

시장에서는 한은이 올해 남은 세 차례(8·10·11월)의 금통위에서 최소 두 차례에 걸쳐 0.25%포인트씩 금리를 올릴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연말에는 기준금리가 연 2.75% 또는 연 3.0%를 기록할 것이란 게 시장의 전망이다. 이 총재는 “시장의 예상은 합리적”이라고 했다. 현 상황에서 추가적인 빅스텝 가능성은 열어두지 않았지만 기준금리 인상 기조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하반기로 갈수록 글로벌 경기 침체와 국내 코로나19 재확산 등으로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면 금리 인상 속도가 조절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날 금통위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선 직전 금통위 때와 달리 ‘경기 하방 위험’이 공식적으로 언급됐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