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아비바람꽃
홀아비바람꽃
“우리 인간만이 생존 경쟁을 넘어서서 남을 무시하고 제 잘난 맛에 빠져 자연의 향기를 잃고 있다. 남과 나를 비교하여 나만이 옳고 잘났다고 뻐기는 인간들은 크고 작건 못생겼건 잘생겼건 타고난 제 모습의 꽃만 피워 내는 야생초로부터 배워야 할 것이 많다.”

황대권 씨가 옥중 경험을 토대로 쓴 《야생초 편지》에는 이 같은 구절이 나온다. 13년 동안 양심수로 복역하며 통찰한 현대 사회와 인간성에 대한 날 선 시선이 드러난다. 그의 말처럼 자연에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은 있을지언정 남을 우습게 보는 교만은 없다.

야생화는 말한다. 모든 사람이 그들처럼 ‘제 모습’을 완성하는 데 공을 들인다면 우리 사회는 한층 조화로워질 것이라고. 1년도 채 되지 않는 야생화의 짧은 일생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봄이면 어김없이 언 땅을 뚫고 싹을 틔워 콘크리트를 비집고 나온 민들레, 산봉우리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날개하늘나리의 끈질긴 생명력…. 이름 모를 야생화들은 한눈팔지 않는다. 꽃을 맺고 씨를 퍼트리는 일에만 오롯이 일생을 바친다. 생존을 위해 온 힘을 다하느라 다른 데 신경 쓸 여력이 없다. 하찮게 여겨지지만 밟혀도 죽지 않고 끝끝내 일어선다. 잡초 같은 집념이 이들의 무기다. 소박하면서도 경이로운 삶의 여정을 끝내고선 조용히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올여름에는 야생화를 찾아보자. 야생화는 땅바닥에 바짝 붙어있는 데다 대체로 크기가 작은 까닭에 고개를 많이 숙여야 비로소 자세히 볼 수 있다. 벌레 먹은 작은 이파리, 햇볕에 말라비틀어진 꽃잎까지 야생화가 걸어온 투쟁의 흔적들에서 동병상련의 아픔을 나눠 보는 건 어떨까. 여름 숲이 힘차게 뿜어내는 대지의 냄새를 맡으며 작은 생물의 위대한 생명력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따뜻한 위로가 온몸을 감싼다.

여름은 사계절 중 야생화를 만나기 가장 좋은 시기다. 희귀한 야생화가 많이 자라는 해발 1000m 이상 고지에서 본격적으로 꽃들이 만개하는 시기다. 지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녹음으로 가득한 오솔길에서 작지만 형형색색의 이야기를 간직한 야생화에 귀를 기울여 보자. 한 세대를 통틀어 꿈과 희망을 품는 일 자체가 사치가 된 지금, 남과 비교하며 오늘도 지친 마음으로 하루를 닫았다면, 떠나자. 숲으로, 숲으로.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