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국수 로봇이 음식을 만들고 있다. / 임대철 기자
쌀국수 로봇이 음식을 만들고 있다. / 임대철 기자
CJ푸드빌의 빕스 매장에서 우동을 만다. 편의점 GS25에선 치킨을 튀긴다. 사람이 아니라, 로봇 얘기다. 대형 매장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도 아니다. 동네 카페, 짬뽕가게, 빵집 등 골목 곳곳에서 심심치 않게 마주치게 된다.

로봇이 코로나19 창궐 후 떠나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 국면에도 돌아오지 않고 있는 매장 직원들의 빈 자리를 채우고 있는 일상의 단면이다. 외식, 영화, 숙박 등 서비스업종에 로봇이 잇따라 도입되고 있다. 국내 로봇 시장은 자동차 등 제조업 중심에서 인력난에 시달리는 서비스업종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추세다.

1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자율주행 서비스 로봇 제조업체 베어로보틱스는 내수용 로봇 주문대수가 지난해 1000대에서 올해 상반기에만 3000대 수준으로 급증했다. 베어로보틱스는 국내 최초로 음식을 나르는 서빙로봇을 양산했다. KT 등에 로봇을 납품하고 있다.

이는 전방 서비스 기업들의 주문이 급증한 데 따른 결과다. ‘배달의민족’ 운영사 우아한형제들은 서빙로봇 렌탈 공급물량이 지난해 8월 400여대에서 최근 630대로 약 1년만에 57.5% 늘었다.

이 로봇들은 롯데백화점 푸드코트, CJ푸드빌 빕스, SPC ‘파리크라상’ 등 대형 유통·프랜차이즈 매장 뿐 아니라 자영업자들의 운영하는 골목상권에도 진입하고 있다.

한국로봇산업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로봇 시장은 총 5조5000억원 규모다. 이중 제조업용 로봇이 2조8000억원으로 가장 비중이 높지만 매년 시장규모는 줄어들고 있다. 반면 전문서비스용 로봇(안내, 청소, 의료, 서빙 등)은 4600억원 규모로 최근 2년간 40% 넘는 성장세를 보였다.

최근 서빙로봇을 매장에 도입한 닥터로빈의 최지희 부장은 “코로나19 이후 지금까지도 홀과 주방에서 일할 사람을 구하기가 매우 어렵다”며 “로봇이 직원 1명 몫까지는 아니지만, ‘보조’ 역할을 충분히 해주고 있어 15개 전 매장에 도입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로봇이 안내·서빙·조리까지

“실례합니다. 고객님. 다 쓰신 접시는 이곳에 넣어주세요.”

15일 찾은 서울 양천구 뷔페 레스토랑 ‘빕스’ 목동41타워점. 손님이 테이블에서 벨을 누르면 로봇이 찾아와 이렇게 인사한다. 키 1m가량의 로봇에 설치된 바구니에 접시와 컵 등을 올려놓으면 로봇은 퇴식 처리를 한다. 성나영 빕스 목동41타워점 매니저는 “로봇 도입 이후 매장 직원들의 업무 피로도가 크게 낮아졌다”며 “힘이 세고 지치지 않는 막내 직원이 들어온 기분”이라고 했다.

빕스 목동41타워점은 운영사인 CJ푸드빌이 가장 적극적으로 로봇을 도입한 매장이다. 총 5대의 로봇이 있다. 4대는 손님 안내와 서빙, 퇴식을 담당하고 1대는 쌀국수와 우동을 조리한다.
이곳은 1110㎡(336평) 규모의 초대형 매장이다. 홀에서 근무하는 직원은 스마트 워치에 하루 3만보가 찍힐 정도로 온종일 바삐 움직여야 했다. 그런데 최근 로봇이 매장에 도입된 후 하루 1만5000보로 이동이 절반이나 줄었다.

장시간 서서 뜨거운 열을 맞으며 조리를 해야 해 직원들이 기피하던 ‘우동·쌀국수 코너’도 로봇이 맡았다. 고객이 재료를 그릇에 담아 조리 공간에 올리면 로봇이 가져가 데친다.

30초 후 로봇은 삶은 재료를 담은 채의 물기를 털어낸 후 그릇에 넣고 육수를 부어 1분 30초 만에 요리를 완성한다. 로봇이 만든 쌀국수를 먹어 본 김상준(9세) 군은 “맛있다”며 엄지를 내밀었다.

직원 안 보이는 영화관

영화관을 찾은 시민들이 키오스크로 주문을 하고 있다. /임대철 기자
영화관을 찾은 시민들이 키오스크로 주문을 하고 있다. /임대철 기자
영화관은 기계가 사람을 대신한 지 오래다. CJ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영화관들은 키오스크를 설치해 표를 구입하도록 한 데 이어 최근 ‘자율 입장 제도’를 도입해 검표 작업을 생략했다.

티켓을 구입하고 영화를 관람한 뒤 극장을 나설 때까지 영화관 직원을 한 명도 마주치지 않는 게 가능할 정도다. 그나마 팝콘, 음료 코너에 가야 직원들을 볼 수 있다.

국내 영화관 점유율 1위(입장권 매출 기준)인 CJ CGV가 전국 영화관에 비치한 키오스크는 2012년 121대에서 2017년 631대, 현재 1114대로 급증했다. 임직원 수는 코로나19 전인 2019년 1분기 6255명에서 올해 1분기 3216명으로 3년 새 반토막 났다.

CJ CGV 관계자는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 국면에서 관람객들이 다시 극장을 찾았을 때 처음엔 다소 낯설어했지만, 이제는 무인화에 익숙해지고 있다”며 "극장은 코로나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기는 어렵기 때문에 고객의 편의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아예 사람이 없는 커피·아이스크림 점포도 전국 곳곳에 생겨나고 있다. 달콤커피의 로봇 카페 브랜드 ‘비트’는 매장에 상주 직원이 1명도 없다. 키오스크에서 주문, 결제하면, 로봇이 커피를 만들어 준다. 고객 반응이 좋아 전국에 160곳이나 매장이 생겼다.

SPC의 아이스크림 브랜드인 배스킨라빈스도 무인매장 ‘플로우’를 7곳 운영한다. 인건비가 들지 않으니, 오후 10시에 문을 닫는 다른 매장과 달리 24시간 문을 열 수 있다.

하락하는 로봇 대여료..도입 확산할 듯

로봇이 음식을 서빙하고 있다. /자료 배달의 민족
로봇이 음식을 서빙하고 있다. /자료 배달의 민족
이처럼 외식, 영화, 호텔 등 서비스업종의 무인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이유는 일할 사람이 부족한 영향이 크다. 한국외식업중앙회 관계자는 “코로나19 기간 동안 배달업 등으로 빠져나간 인력이 돌아오지 않고 있다”며 “탄력적인 시간 활용을 선호하고 힘든 일을 기피하는 최근 젊은 계층의 경향도 외식업 구인난이 심화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구인난의 틈새는 로봇이 성공적으로 메우고 있다. 현저하게 떨어진 비용이 이를 가능케 했다. 서빙 로봇의 현재 대여가격은 월 50만~100만원 수준이다. 최저임금 기준 월급 191만4440원(올해 시급 9160원 기준)의 절반 이하다. 최근 우아한형제들이 월 34만원짜리(3년 약정) 로봇까지 내놓으면서 대여가격이 내려가는 추세다.

우호적인 여건이 조성되면서 앞으로 서비스 로봇 시장은 폭발적으로 커질 것이란 예상이 많다. 시장조사기관인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는 전 세계 서비스로봇 시장이 2019년 310억 달러(40조5000억원)에서 2024년 1220억 달러(159조5000억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하정우 베어로보틱스 대표는 “과거에는 제조업이나 홍보용으로만 로봇이 쓰여 왔다면, 이제부터는 일상에서 사람을 돕는 로봇이 본격적으로 보급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수정/한경제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