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년 만에 '그림 뒷면'서 발견된 반 고흐 자화상의 비밀
스코틀랜드 국립 미술관의 수석 회화 관리인 레슬리 스티븐슨. 지난 주 프랑스 현대미술과 인상주의 전시를 준비하던 그는 최근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의 카탈로그를 만들기 위해 작품들을 엑스레이로 들여다보던 중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미술관 소장품 중 하나인 '농부 여인의 초상(1885)'에서 한 남자가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 것. 챙 넓은 모자를 쓰고 목에 스카프를 느슨하게 두른 채 수염난 얼굴을 하고 있는 그림 속 남자는 반 고흐였다.

캔버스 뒷면에 접착제와 판지 층 아래로 137년 간 숨겨져 있던 이 자화상은 반 고흐의 초기 자화상이었다. 스티븐슨은 15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일상적인 작업 속에서 이 초상을 발견하고 정말 스릴이 넘쳤다"고 말했다.

스코틀랜드 내셔널갤러리에서 새로운 자화상이 확인됨에 따라 존재가 확인된 반 고흐의 자화상 수는 36장으로 늘게 됐다.
137년 만에 '그림 뒷면'서 발견된 반 고흐 자화상의 비밀
이 엑스레이 작업은 구식 암실에서 처리됐다. 그가 자신의 자화상에 사용한 건 농부 여인의 얼굴보다 훨씬 더 어두운 색상의 안료로 X선이 판지를 통과한 후 나타났다. 이 그림은 고흐의 실험적 자화상 중 하나다. 네덜란드의 반 고흐 박물관에는 다섯 점의 유사한 작품이 있다. 1883 년 12 월부터 1885 년 11 월까지 네덜란드 남부 누에넨에 살았던 그의 초기 캔버스 뒷면에 자화상을 다수 남겼다.

이번 자화상이 발견된 시기는 반 고흐가 초기 걸작인 '감자 먹는 사람(1885)'을 준비하기 위해 많은 농민 연구를 수행하던 때다.

반 고흐의 자화상 중 상당수는 그가 프랑스 파리에 체류했던 1886년부터 1888년 사이에 제작됐다. 이번에 발견된 자화상은 현존하는 자화상 중에서도 초창기 작품에 해당한다.
137년 만에 '그림 뒷면'서 발견된 반 고흐 자화상의 비밀
프랑스 미술 분야 수석 큐레이터 인 프랜시스 파울은 "반 고흐의 예술적 발전에서 중요한시기에 대한 유산이 하나 더 늘었다"며 "그는 1886 년 파리로 이사한 후 프랑스 인상파의 작품을 처음 접했으며 동생 테오의 지원을 받고 앙리 드 툴루즈-로트레크와 에밀 베르나르와 같은 전위 예술가를 만났는데 이 작품은 그 시기 이전에 그린 작품"이라고 말했다.

반 고흐는 조르쥬 세라, 폴 고갱 등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더 화려하고 표현력 짙은 회화 스타일을 채택했다. 처음으로 깨진 붓질을 실험하고 자신을 모델로 사용하면서 캔버스를 앞뒤로 재사용해 돈을 절약했다.

스코틀랜드 내셔널갤러리는 향후 자화상 위의 판지를 제거하고 작품을 복원할 예정이다.

박물관 측은 "당장 판지를 뜯어내고 싶지만, 접착제 층은 매우 조심스럽게 제거해야 한다"며 "복잡한 작업이기 때문에 당장 착수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달 말부터 열리는 전시회에서 빛 기술을 이용해 새로 발견된 고흐 자화상의 엑스레이 이미지를 공개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 작품은 에든버러에서 활동하던 변호사 알렉산더 메이트가 1960년 기증한 작품이다.

김보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