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유전자 분석기기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일루미나의 암 진단 시장 진출에 제동이 걸렸다. 일루미나의 암 진단 업체 그레일 인수가 독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지를 두고, 미국과 유럽 양쪽에서 조사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유럽 최고 법원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U competition Authority)가 결정한 독점 금지 조사를 지지한다고 지난 13일 판결했다. 위원회의 조사 결과에 따라 일루미나는 막대한 벌금을 물거나 최악의 경우 그레일을 다시 매각해야 할 수도 있다. 일루미나는 항소에 나섰다.

그레일은 2016년 일루미나에서 분사한 유전자 분석 기반 암 진단업체다. 일루미나는 지난해 80억달러(약 10조4780억원)로 그레일을 다시 인수했다. EU 집행위원회는 인수 가격인 80억달러가 적정한 것인지를 비롯해 반독점과 관련한 면밀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일루미나의 그레일 인수는 미국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가 반독점 금지법 문제로 조사를 진행 중이다. 다만 FTC는 인수 거래 중지 명령을 한 뒤, 법원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단 일루미나가 조율하게끔 하는 방식으로 방향을 튼 상태다. 일루미나는 반독점과 관련한 미국과 유럽 유관 기관의 지적에도 지난해 그레일 인수를 완료했다. FTC 변호사들은 일루미나가 그레일을 완전 매각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제가 되고 있는 까닭은 일루미나의 압도적인 유전자 분석기기 시장 점유율에 있다. 세계 시장 점유율이 80%를 넘으며, 유럽 일부 국가에선 90%를 웃돈다. 여기서 예상 가능한 문제는 '몰아주기'다. 유전자 분석기기 시장을 독점한 상태에서 신제품이나 우수 제품을 그레일에 몰아주는 상황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 한 진단 업계 관계자는 “사실상 일루미나는 암 진단 업계의 승자와 패자를 고를 수 있는 칼 자루를 손에 쥐고 있는 셈”이라며 “때문에 미국과 유럽에서 반독점 관련한 문제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과 미국 반독점 관련 유관 기관의 조사 및 검토는 일루미나 측에 상당한 압박이 되고 있다. 그레일을 매각하는 최악의 경우 헐값에 팔게 될 가능성이 높고, 이 경우 상당한 재정적 부담을 일루미나가 떠안을 수 있다.
유전자 분석기 세계 1위 일루미나, 암 진단 시장 진출 제동[이우상의 글로벌워치]
이같은 상황은 일루미나의 주가에도 반영되고 있다. 유럽 최고 법원의 판결 소식이 알려지자 일루미나의 주가는 지난 13일 4.1% 급락했으며, 이튿날인 14일에도 2.1% 하락한 177.23달러로 장을 마쳤다. 52주 신저가인 동시에 주가는 약 5년 전인 2017년 6월 수준으로 회귀했다.

업계 관계자는 “일루미나가 그레일에 특정 기기를 독점 공급하지 않는다는 식의 조정안이 나올 가능성이 높지만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일루미나의 독점 금지 문제가 불거진 건 이번이 두 번째다. 2020년엔 유전자 분석 회사 퍼시픽 바이오사이언스를 인수하려 했다 FTC의 반대로 포기했다.

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