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기업 중 절반 이상이 미흡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으로 계약이나 수주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최근 유럽연합(EU)은 공급망 실사 법안을 통해 ESG 기준에 문제가 있는 협력업체에 불이익을 주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수출기업 "미흡한 ESG 탓 계약 파기 우려"
대한상공회의소는 이런 내용을 담은 ‘수출기업의 공급망 ESG 실사 대응 현황과 과제’ 보고서를 17일 발표했다. 대한상의가 지난달 20~30일 국내 수출기업 30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52.2%가 ESG 미흡으로 향후 고객사(원청기업)로부터 계약·수주가 파기될 가능성이 높다고 답했다.

원청기업의 ESG 실사에 대한 대비도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ESG 실사 대비 수준’을 묻는 질문에 ‘낮다’는 응답이 △매우 낮음 41.3% △다소 낮음 35.9% 등 77.2%로 나왔으며 ‘높다’는 응답은 22.8%에 그쳤다.

‘실사 단계별 대응 수준’을 묻는 질문에도 ‘대응체계 없음’이라는 응답이 절반 이상인 58.1%였다. 한마디로 아무런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의미다. ‘사전 준비 단계’라는 응답은 27.5%였다.

‘공급망 ESG 실사 관련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는 ‘내부 전문인력 부족’(48.1%)을 꼽았다. 이 밖에 △진단 및 컨설팅·교육 비용 부담(22.3%) △공급망 ESG 실사 정보 부족(12.3%) 등이 뒤를 이었다.

ESG 실사를 위해 집행할 수 있는 예산 범위를 묻는 질문에는 △50만원 미만(29.9%) △200만원 이상(29.2%) △50만원 이상~100만원 미만(26.3%) 등의 순이었다. ESG 컨설팅과 지속가능 보고서 제작에 투자할 수 있는 예산 범위로는 △1000만원 이상~2000만원 미만(26.7%) △1000만원 미만(35.1%) 순으로 답했다.

조영준 대한상의 지속가능경영원장은 “일반적으로 공급망 중간에 위치한 중소·중견기업은 여전히 ESG 준비가 미비한 상태에서 고객사의 ESG 요구에 대응하면서 하위 협력업체까지 관리해야 하는 이중고를 안고 있다”고 분석했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2월 ‘기업 공급망 실사법’을 공식화했다. 이 법은 기업의 전 공급망에 걸친 환경, 노동·인권, 지배구조 등 ESG 요인에 대해 실사를 하는 한편 실사 과정에서 발견된 문제와 대응 방안에 대해 공개할 의무를 부과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유럽 지역에 사업장을 가진 기업은 물론 자회사·공급업체·하청업체까지 실사 범위에 들어간다.

목표 시행 시점은 2024년이다. EU에 본사를 두지 않은 해외 기업의 현지 연 매출이 1억5000만달러를 초과하는 경우 적용 대상이 된다. 2026년부터는 연 매출 4000만달러 초과 기업으로 대상이 확대된다.

업계 관계자는 “해당 법안은 EU의 핵심 가치인 인권과 인간 존엄성에 대한 존중을 강조하고 있어 하청업체의 인권 관련 문제를 가지고도 원청 기업에 소송을 걸 수 있다”고 말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