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日 '기시다노믹스' 시작됐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선거 유세 중 총격을 받아 사망한 지 열흘이 지나도록 일본의 추모 열기는 식지 않고 있다. 그의 업적도 재조명받고 있다. 대규모 경기부양책인 ‘아베노믹스’도 그중 하나다. 보수 세력을 중심으로 아베 전 총리의 유지를 받들어 ‘아베노믹스를 계속 이어 나가자’는 주장이 잇따르고 있다. 반면 일본의 상당수 경제 전문가는 “아베노믹스의 유통기한이 끝났다”고 말한다.

최근에 만난 한 일본 경제학자도 “아베노믹스는 결과적으로 실패”라고 말했다. 주요국 가운데 일본만 대규모 금융완화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사정, 그 결과 엔화 가치가 24년 만에 최저로 떨어진 현실이 실패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일본 경제의 추락 막은 아베

아베노믹스의 향방을 놓고 주장이 엇갈리는 가운데 최근 금융 정보회사 CEIC가 흥미로운 통계를 내놨다. 아베노믹스 직전인 2012년 말을 100으로 놓고 전체 근로자, 정규직 근로자, 파트타임 근로자의 평균 명목 임금과 물가 등 4개 항목을 연도별로 비교했다. 만성 디플레이션이 시작된 1997년부터 2012년까지는 모든 항목이 줄곧 마이너스였다. 특히 15년간 물가가 103에서 100으로 완만하게 떨어지는 사이 전체 근로자 임금은 115에서 100으로 추락했다.

대책 없는 추락을 저지한 게 아베노믹스였다. 2012년을 기점으로 4개 항목이 모두 상승세로 돌아섰다. 코로나19의 충격을 받은 2020년 전후를 제외하면 상승 추세는 올해까지 이어지고 있다. 아베노믹스가 일본 경제를 깨운 셈이다. 아베의 운구차를 눈물로 떠나보내는 시민들의 인터뷰도 “생활을 안정시켜 준 고마운 분”이라는 내용이 많았다.

반면 이 통계는 아베노믹스의 허상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2013년부터 4개 지표가 모두 오르는 가운데 임금 상승률은 매년 물가 상승률을 밑돌았다. 임금의 액수 자체는 꾸준히 올랐어도 물가를 반영한 실질 임금은 줄곧 마이너스였다. 아베노믹스의 핵심은 기업 실적을 개선해 개인 소득을 높이고 소비를 늘려 일본을 디플레에서 탈출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핵심 고리인 소득 증대가 이뤄지지 않았음을 통계는 보여준다.

'포스트 아베노믹스' 논의 활발

아베노믹스 지지자는 2014년 3%였던 소비세를 두 차례에 걸쳐 10%로 인상하지만 않았어도 실질 소득이 플러스였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소비세 인상은 일본의 고령화로 인해 2018년 121조엔이던 사회보장비가 2040년 190조엔으로 불어나는 데 대한 대비책이었다. 반드시 해야 했던 것인 만큼 ‘소비세만 아니었어도’라는 가정도 성립하지 않는다. 아베노믹스를 실패로 결론짓는 전문가들도 그 의미만큼은 높이 평가한다. 일시적이었어야 할 부양책을 10년 가까이 시행한 것이 실패의 원인일 뿐 접근법 자체는 적절했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작년 10월 집권한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아베와 다른 노선을 걷는 정치인이다. 그의 간판 경제정책은 ‘성장과 분배가 선순환하는 새로운 자본주의’다. 성장 일변도였던 아베노믹스와 선을 그었다. 그동안은 자민당 최대 파벌의 영수였던 아베를 의식했지만 이제부터는 자신의 색깔을 조금씩 드러낼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아베노믹스와 서서히 결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이처럼 아베 사후 일본은 경제의 방향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 논의가 활발하다. 반면 이제 막 집권한 윤석열 정부는 경제에 대한 뚜렷한 비전을 아직 제시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