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낸드플래시를 주로 생산하는 충북 청주공장 증설 계획을 최근 보류했다. 인플레이션과 원·달러 환율 급등 등으로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투자 계획을 수정한 것이다. LG에너지솔루션도 최근 미국 투자를 전면 재검토하는 등 국내 기업들의 투자 위축이 가시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글로벌 불확실성 증폭에…SK·LG 등 투자 재검토
19일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 이사회는 지난달 29일 청주공장 증설 안건을 논의했으나 최종 결정을 보류하기로 했다. 업계 관계자는 “낸드플래시 수요·공급 상황에 대한 큰 그림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SK하이닉스는 청주 테크노폴리스 산업단지 내 43만3000여㎡ 부지에 약 4조3000억원을 투자해 신규 반도체 공장(M17)을 증설할 계획이었다. 내년 초 착공해 2025년 완공을 목표로 했다. 증설 생산라인에는 낸드플래시 공정이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가 공장 증설을 미룬 것은 최근 반도체 업황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인플레이션과 중국 경기 둔화 등으로 가전 및 정보기술(IT) 기기 수요가 둔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 수요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SK하이닉스는 내년 설비 투자 규모도 줄이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블룸버그통신은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SK하이닉스가 내년 자본지출을 25%가량 줄여 16조원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당초 세웠던 내년도 생산능력 확대를 재검토한다는 의미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지난 13일 ‘대한상의 제주포럼’에서 기자들과 만나 “작년에 세웠던 투자 계획은 당연히 바뀔 가능성이 존재한다”며 “원재료 부문이 너무 많이 올랐기 때문에 원래 투자대로 하기에는 계획이 잘 안 맞는다”고 말했다.

반도체업체의 투자 재검토는 국내 기업뿐만이 아니다. 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1위인 대만 TSMC와 메모리반도체 업계 3위인 미국 마이크론도 시설 투자 계획 조정을 검토하고 있다.

하반기 투자 축소 움직임은 국내 기업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최근에는 LG에너지솔루션이 투자 계획을 재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에 1조7000억원을 들여 배터리 단독공장을 짓기로 했지만 최근 인플레이션과 환율 상승에 따라 당초 계획한 투자비보다 훨씬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면서 손익계산서를 다시 짜고 있다. 당초 올해 2분기 착공해 2024년 하반기에 양산하는 것을 목표로 했으나, 최근 고물가·고환율 등 여파로 투자비가 2조원대 중반으로 불어날 것으로 추산됐다.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경영 환경 악화에 따른 투자비 급등으로 투자 시점 및 규모, 내역 등에 대해 면밀하게 재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올해 상반기 기업들의 시설 투자도 전년 동기에 비해 대폭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상반기 시설 투자·유형자산 취득을 공시한 기업은 87곳, 투자 금액은 8조3032억원으로 집계됐다. 작년 상반기(12조8136억원)보다 35.2% 급감했다.

박신영/김익환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