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기쁘다. 꿈을 꾸는 것 같다.”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우승 소감. 하지만 프로골퍼 이승민(25)의 입을 통해 나오자 울림이 달랐다. 자폐성 발달장애를 지닌 그가 장애인 US오픈 초대 챔피언에 오른 뒤 내뱉은 소감이기 때문이다.

이승민은 21일(한국시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파인허스트 리조트 6번 코스(파72)에서 열린 장애인 US오픈 최종 라운드에서 펠리스 노르만(스웨덴)을 연장전 끝에 물리치고 우승했다. 공이 날아가는 모습이 좋아 골프에 입문한 지 10년, 프로로 전향한 지 5년 만에 만들어낸 쾌거다.

올해 처음 열린 이번 대회 남자부에는 세계 각국에서 장애인 골퍼 78명이 참가했다. 이승민은 이날 1언더파 72타를 쳐 최종 합계 3언더파 213타를 기록했다. 이승민은 이 대회에서 유일하게 3라운드 내내 언더파 스코어를 적어냈다. 미국골프협회(USGA)는 이승민의 우승 소식을 전하며 “역사가 만들어졌다”고 밝혔다.

이승민은 아이스하키로 운동을 시작했지만 부상이 너무 잦아 골프로 바꿨다. 골프는 그가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였다. 타인과 눈도 마주치지 않을 정도로 세상에 무심했던 이승민은 골프를 치면서 언어 구사와 소통력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그 결과 발달장애 2급이 3급으로 조정되기도 했다. 하나금융그룹은 이승민이 한국프로골프(KPGA) 준회원이 된 2016년부터 7년째 지원해주고 있다.

이번 대회 내내 노스캐롤라이나의 더운 날씨는 이승민을 괴롭혔다. 그래도 그는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고 여섯 번이나 되뇌며 집중력을 유지했다. 이승민은 우승 인터뷰에서 “더운 날씨에 (축하 세례로) 물을 뒤집어쓰니 시원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어머니 박지애 씨(56)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인해 자폐성 장애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며 “많은 분이 승민이를 보면서 ‘자폐성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현실 세계에 잘 적응할 수 있구나’라고 생각해주시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