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급등에 점진적 금리인상 안내 '유명무실'

유럽중앙은행(ECB)이 21일(현지시간) 예상과 달리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상하자 그동안 미국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주요 의사전달 수단으로 활용해온 사전안내(포워드 가이던스)가 사실상 종말을 맞았다고 블룸버그·로이터통신 등이 진단했다.

ECB의 이날 '빅스텝'(0.5%포인트 인상) 행보는 시장에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는 ECB가 명백하게 0.25%포인트 인상 방침을 사전에 밝혀 왔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달 9일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통화정책회의를 열어 기준금리를 결정한 뒤 "7월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런 점진적 인상은 라가르드 총재의 오래된 입장이었다.

다른 ECB 인사들도 이런 인상 계획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예컨대 올리 렌 핀란드 중앙은행 총재는 지난 15일 핀란드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ECB가 7월에 0.25%포인트 인상할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빅스텝을 시사하는 언급도 없지 않았다.

라가르드 총재는 지난달 28일 한 연설에서 "점진적인 인상이 적절하지 않은 분명한 조건이 있다"면서 "예를 들어 인플레이션 기대를 무력화할 정도의 높은 물가상승률이나, 잠재성장률에 장기적인 손실이 발생할 조짐이 있는 경우 우리는 부양 조치를 빠르게 회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8.6%로, 관련 통계가 집계된 이래 최고치를 기록하자 빅스텝 가능성이 일각에서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회의 전까지는 0.25%포인트 인상 전망이 대세였다.

이번 회의에 앞서 로이터가 경제전문가 63명을 상대로 실사한 설문 결과 1명을 제외한 나머지 전원이 0.25%포인트 인상을 점쳤다.

블룸버그의 설문에서는 53명 중 4명만이 0.5%포인트 인상을 예상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어떤 종류의 사전안내를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리는 훨씬 더 유연하다"고 말해 사전안내의 '종언'을 선언하기도 했다.

사실 중앙은행의 사전안내에 대한 신뢰성은 이미 지난달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무너뜨린 바 있다.

연준은 6월 통화정책회의에서 시장의 대체적인 전망과 달리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했다.

고공행진 하는 물가를 잡기 위한 적절한 대응이었다는 평가는 차치하고서 이는 시장과의 약속을 저버리는 행위였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이보다 앞선 5월 통화정책회의 당시 앞으로 두어 번 회의에서 0.5%포인트 인상이 있을 것이라고 시사하면서 0.75%포인트 인상은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대상이 아니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로이터는 이를 두고 "연준이 중앙은행의 사전안내를 죽였다면, ECB는 관에 최후의 못을 박은 셈"이라고 평가했다.

사전안내는 세계 금융위기 이후 양적완화(QE) 정책을 주도해온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이 캐나다 중앙은행의 선례를 좇아 2011년 도입한 이래 중앙은행의 주요한 의사소통 도구로 자리를 잡았다.

사전안내는 투자자들에게 향후 통화정책 방향을 안내해 이에 대한 인식이 채권과 다른 자산시장 전반으로 확산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나아가 이로 인해 기업과 소비자의 행동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도이체방크 관계자는 ECB의 이번 결정은 "현재로서 중앙은행의 사전안내가 무용함을 다시 한번 보여 준 것"이라며 "사전안내는 거의 모든 곳에서 죽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사전안내의 종언으로 투자자들이 경제지표가 발표될 때마다 더 민감하게 반응해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ECB 빅스텝으로 각국 중앙은행 '사전안내' 관행 사실상 종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