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그 미술관에서는, 시각장애인도 미술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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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기준으로 열일곱 걸음 정도 걸어가면 오른쪽에는 건물 2층 높이의, 둥글게 휘어진 흰색 장막이 쳐져 있습니다. 장막으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서 만져 보실까요? 딱딱한 벽이 느껴지시죠?”
22일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 기획전이 열리고 있는 제주 서귀포 포도뮤지엄. 시각장애인용 오디오가이드를 들고 테마공간 ‘이동하는 사람들’ 앞에 서니 기계에서 이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눈을 감고 목소리의 지시를 따르자 머릿속에 작품의 윤곽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미술관 관계자는 “시각장애인들도 생생한 감동을 느낄 수 있도록 한국콘텐츠접근성연구센터 등 전문기관의 자문을 받아 가이드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 중 한국어와 영어로는 어린이용 버전의 해설을 들을 수 있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쉬운 단어와 표현으로 작품을 해설한 게 특징으로, 녹음은 초등학생이 했다. 어린이 관객들이 친구와 대화하듯 편안한 기분으로 전시를 관람할 수 있게 배려했다는 설명이다. 이번에 마련한 시각장애인 오디오가이드는 미술계의 주목을 한눈에 받고 있는 파격적인 시도다. 포도뮤지엄은 충실한 콘텐츠 제작을 위해 한국콘텐츠접근성연구센터 등 전문기관들의 자문까지 받았다.
언어별·연령별·시각장애인 오디오가이드를 만든 사람은 김희영 포도뮤지엄 총괄 디렉터. 김 디렉터는 “다양한 정체성이 공존하는 세상을 고민하기 위해 기획한 전시인 만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작품을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도슨트 프로그램을 마련했다”며 “누구나 쉽고 편하게 전시를 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이렇다. 테마공간에 설치된 작품 중 하나인 ‘디파처보드’는 공항 안내판을 연상시키는 구조물이다. 이곳에는 세계 각지에서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던 이들의 사연이 떠오른다. ‘주소 터널’은 투명 LED 패널과 거울을 활용한 설치 작품을 통해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본국 주소를 표기한 글씨가 교차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메리칸 드림’에는 목욕 놀이용 러버덕을 줄지어 놓았는데,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들어가는 멕시코인들이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사막에 이정표로 두는 인형을 형상화했다.
포도뮤지엄 관계자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콘텐츠를 제공하는 뮤지엄, 문턱을 낮추고 소통하는 뮤지엄을 목표로 계속 나아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전시는 내년 7월3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22일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 기획전이 열리고 있는 제주 서귀포 포도뮤지엄. 시각장애인용 오디오가이드를 들고 테마공간 ‘이동하는 사람들’ 앞에 서니 기계에서 이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눈을 감고 목소리의 지시를 따르자 머릿속에 작품의 윤곽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미술관 관계자는 “시각장애인들도 생생한 감동을 느낄 수 있도록 한국콘텐츠접근성연구센터 등 전문기관의 자문을 받아 가이드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문턱 확 낮춘 포도뮤지엄
지난해 4월 개관 이후 제주도 관광객들의 필수 방문 코스 중 하나로 자리잡은 포도뮤지엄이 장애인·노약자 등을 위해 파격적인 시설 확충을 단행하면서 주목받고 있다. 휠체어도 쉽게 오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배리어 프리(Barrier-free·무장애 동선)’는 기본. 지난 5일 개막한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 기획전을 위해서는 한국어와 영어, 중국어, 일본어 외에 시각장애인용 오디오가이드까지 총 다섯 개에 달하는 오디오가이드를 배치했다.이 중 한국어와 영어로는 어린이용 버전의 해설을 들을 수 있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쉬운 단어와 표현으로 작품을 해설한 게 특징으로, 녹음은 초등학생이 했다. 어린이 관객들이 친구와 대화하듯 편안한 기분으로 전시를 관람할 수 있게 배려했다는 설명이다. 이번에 마련한 시각장애인 오디오가이드는 미술계의 주목을 한눈에 받고 있는 파격적인 시도다. 포도뮤지엄은 충실한 콘텐츠 제작을 위해 한국콘텐츠접근성연구센터 등 전문기관들의 자문까지 받았다.
언어별·연령별·시각장애인 오디오가이드를 만든 사람은 김희영 포도뮤지엄 총괄 디렉터. 김 디렉터는 “다양한 정체성이 공존하는 세상을 고민하기 위해 기획한 전시인 만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작품을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도슨트 프로그램을 마련했다”며 “누구나 쉽고 편하게 전시를 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스토리텔링으로 쉽게 작품 해설…"모두를 위한 뮤지엄 되겠다"
포도뮤지엄은 개관 이후 예술을 통한 사회적 공감과 인식의 변화, 사회적 가치 실현 등에 천착해왔다. 지난 4월 개관전의 핵심 주제로 '혐오'를 택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가짜뉴스, 뒷담화, 혐오와 차별 등 무겁고 불편한 주제를 정면으로 다룬 전시인데도 총 7만5000여명의 관람객이 몰렸다. 방탄소년단(BTS) 멤버 지민이 지난해 말 이곳을 방문하면서 아미(BTS 팬)들에게 '지민 투어 필수 코스'로 인기를 끌기도 했다. ‘디아스포라와 세상의 모든 마이너리티’라는 이번 전시 주제도 결코 가볍지 않다. 복잡한 현실이 얽힌 주제인데다 디아스포라라는 단어부터가 일반인에게 친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시를 본 관람객들 사이에서는 "이해하기 쉬웠다"는 호평이 쏟아진다. 특히 "작품 사이사이에 있는 특이한 공간들 덕분에 작품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는 의견이 많다. 포도뮤지엄은 "관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테마공간"이라며 "디아스포라라는 주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스토리텔링을 하듯이 공간을 구성했다"고 말했다.예를 들면 이렇다. 테마공간에 설치된 작품 중 하나인 ‘디파처보드’는 공항 안내판을 연상시키는 구조물이다. 이곳에는 세계 각지에서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던 이들의 사연이 떠오른다. ‘주소 터널’은 투명 LED 패널과 거울을 활용한 설치 작품을 통해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본국 주소를 표기한 글씨가 교차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메리칸 드림’에는 목욕 놀이용 러버덕을 줄지어 놓았는데,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들어가는 멕시코인들이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사막에 이정표로 두는 인형을 형상화했다.
포도뮤지엄 관계자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콘텐츠를 제공하는 뮤지엄, 문턱을 낮추고 소통하는 뮤지엄을 목표로 계속 나아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전시는 내년 7월3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