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우영우라는 심해(深海)
괴로운 날엔 고래를 떠올린다. 바다 위로 솟구쳐 힘차게 숨을 뿜어내는 하얀 포말을 상상한다. 회전문을 지날 땐 잠시 멈춰 숨을 고른다. 김밥이 담긴 접시를 마주하면 재료를 하나씩 눈에 담는다. 그렇다. 나도 ‘우영우 앓이’ 중이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겪고 있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는 딱 한 달 전 무더위 속에 찾아온 드라마 주인공이다. 본방송 시청률이 13%를 넘었고, 넷플릭스 비영어권 순위에선 독보적 1위다. 제작사의 수익률이 연일 화제인 데다 만나는 사람마다 ‘우영우 보냐’는 말을 꺼낼 정도니, 이쯤이면 신드롬이라 할 만하다.

우영우의 무엇이 사람들을 끌어당긴 걸까. 우영우는 낯설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주인공이라는 점, 그런데도 주인공을 유난하게 동정하거나 희화화하지 않는다는 점, 우영우가 비상한 머리로 꽤 골치 아픈 법적 분쟁을 깔끔하게 해결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동시에 익숙하다. 우영우는 우리처럼 지하철로 출퇴근하고, 주변 사람들과 크고 작은 갈등에 휘말리곤 한다. 저녁엔 집 근처 술집에서 친구와 수다를 떨며 하루를 닫는다. 그렇게 낯설면서 익숙한 것들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고래 박사’ 우영우는 말한다. “우리가 달의 뒷면보다 심해에 대해 아는 게 훨씬 더 적다는 걸 아십니까?”
[토요칼럼] 우영우라는 심해(深海)
달은 멀고, 바다는 가깝다. 바다는 언제든 갈 수 있고, 달은 아득한 목적지다. 그런데도 우리는 바다보다 달에 더 심취해 있다. 가까이 있는 신비로운 세계를 곁에 두고 왜 그리 멀리 있는 것들만 올려다보고 사느냐고, 우영우는 말한다.

우영우가 살고 있는 깊은 바다엔 다른 고래들이 산다. 대왕고래, 향유고래, 혹등고래처럼 고래 이름만큼이나 다양한 어종이다.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려온 서울대 의대 수석 ‘엄친아’, 원하지 않는 결혼을 해야 하는 부잣집 성소수자 딸, 평생 믿어온 형제들과 유산 분쟁에 휘말린 농부 아저씨, 지식재산권 특허 소송으로 망할 위기에 처한 중소기업 사장, 그리고 ‘내 딸이 언젠가 눈을 마주쳐 줄 거야’ 기대하며 오랜 시간 헌신해온 싱글대디까지. 막막한 바닷속 고래들을 수면 위로 올라와 숨 한번 쉴 수 있게 도와주는 건 우영우와 그가 소속된 로펌 ‘한바다’다.

한바다와 우영우의 바닷속엔 그동안 법정 드라마 속에서 보던 자극적 사건이나 영웅은 없다. 주변에서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는, 그래서 더 이상 누구도 크게 놀라거나 관심 갖지 않는 그런 사건들이 있다. 어쩌면 굳이 대형 로펌이 변호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일들이란 얘기다. 알고도 지나치고 있던 바닷속 깊은 이야기를 우영우와 동료 변호사들은 세심하게 관찰한다. 정치인들의 권력 다툼, 연예인들의 사생활, 누군가의 화려한 SNS 계정처럼 다른 이들이 ‘달의 뒷면’에 관심을 쏟을 때 이들은 우리 옆에 가장 가까이 있는 바다 생물들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는다.

우영우의 변론이 극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오로지 법으로만 싸우기 때문이다. 편견 속에 평생 살아온 우영우는 아무 편견 없이 사건을 대하고, 감정 없이 약자들을 대한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이기 때문에 오히려 쉽게 풀 수 있는 문제들이다. 그 과정들은 보는 사람들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약자이자 도와줘야 할 대상이라고 여겼던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강력한 삶의 무기가 돼 돌아오는 전복의 순간을 마주한다.

인류는 아직도 자폐가 왜 생겨나는지, 정확히 무엇인지도 모른다. 의학 발달로 많은 질병이 감소세에 있지만 유독 자폐만큼은 1960년대 이후 지금까지 발병률이 늘고 있다. 미국에선 신생아 2500명 중 1명꼴이던 자폐 비율이 88명 중 1명이 됐다. 우리나라도 비슷하다. 실제 자폐인을 곁에 둔 가족들은 우영우를 보며 그들이 마주한 현실과 비교한다. 때로 공감하고, 박탈감도 많이 든다고들 한다. 하지만 우영우가 말하려는 건 자폐라는 증후군 자체가 아니다. 자폐인의 극히 드문 천재성을 연결해 장애를 미화하려는 건 더더욱 아니다. 깊은 바닷속 다양한 생물과 거기에 함께 살고 있는 고래들의 이야기, 어쩌면 자폐보다 더 지독한 병을 앓고 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우영우를 보며 생각한다. 편견으로 가득 찬 시선이 얼마나 우리를 불행하게 해왔는지, 알려고 하지 않았던 주변 사람들의 사소한 이야기가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를 말이다. “자폐는 극복할 대상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 중 하나”라고 외치면서도 누구도 지금까지 이렇게 깊은 바닷속을 보여주지 않았다. 우리가 달의 뒷면이 아니라 심해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다. ‘괴상한 천재, 자폐 변호사’라는 수식어를 빼더라도 우영우가 던지는 메시지는 울림이 크다. 더 이상 달을 궁금해하는 데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고. 우리가 살고 있는 바다에서 얼마나 신비로운 일들이 나날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들여다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