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커상 후보 지명 후 첫 신작 '믿음에 대하여' 출간
"2020년대 풍속화"…직장 내 괴롭힘, 팬데믹, 부동산 등 세태 녹여
박상영 작가 "밥벌이하며 견디는 삶, 믿음 깨져도 살아지죠"
"기대를 별로 안 해 서운함은 1도 없었어요.

다른 언어, 문화권에서 인정받은 것 같아 격려받는 느낌이었죠."
박상영(34) 작가는 지난 3월 세계적인 권위 문학상인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1차(롱리스트) 후보에 오르며 주목받았다.

소설 '대도시의 사랑법'(2019)으로 등단 6년 만에 세계 문학계에 제대로 눈도장을 찍은 것이다.

최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나 잘하고 있구나' 싶어 스스로 칭찬해 줬다"며 "(상은) '다음에 좀 더 나이 들어서 받아야지'라고 생각했다"고 시원스레 웃었다.

후보 지명 후 처음 펴낸 작품은 연작 소설 '믿음에 대하여'(문학동네)다.

네 편의 중단편을 묶은 '믿음에 대하여'는 전작 '대도시의 사랑법'과 '1차원이 되고 싶어'를 잇는 '사랑 3부작'의 최종 작품이다.

첫사랑의 동요와 말 못 할 비밀을 품은 10대, 사랑에 질주하던 20대를 넘어 이번엔 사회생활에 분투하는 30대의 일과 사랑을 들여다봤다.

모두 동성 연인이 등장하는 퀴어 장르이지만 동시대를 포착한 섬세한 시선, 노래의 '펀치 라인'처럼 꽂히는 문체가 이야기를 껴안게 한다.

박 작가는 "10~20대 이야기는 내 기억을 반추해 썼다면 이번엔 밥벌이란 의미에서 중산층 노동자를 중심에 놓고 썼다"고 했다.

"모두 견디며 돈을 벌잖아요.

그 안의 갈등과 고통을 최대한 높은 곳에서 카메라로 찍는 느낌으로 다루고 싶었죠. 균형감 있는 시선으로 있는 그대로의 2020년대 풍속화를 그렸어요.

"
박상영 작가 "밥벌이하며 견디는 삶, 믿음 깨져도 살아지죠"
'믿음에 대하여' 속 서사는 크게 두 동성 커플을 축으로 주변 인물들의 삶이 펼쳐진다.

첫 단편 '요즘 애들'을 쓸 때만 해도 연작이 될 줄 몰랐다고 한다.

각 단편 제목 옆엔 주인공의 이름이 붙었다.

'요즘 애들'의 김남준, '보름 이후의 사랑'의 고찬호, '우리가 되는 순간'의 유한영과 황은채, '믿음에 대하여'의 임철우는 입사동기, 회사의 친한 동료, 애인이자 파트너 등의 관계로 연결지점을 만들어낸다.

그 안에는 직장인과 자영업자인 이들을 고단하게 하는 고질적인 세태가 짙게 깔려있다.

"요즘 애들"이라 운운하며 웃는 얼굴까지 트집 잡는 직장 내 괴롭힘, 압도적인 실적에도 밀리는 여성의 유리천장, 계약직의 고용 불안, '정상 가족'을 꾸릴 수 없는 소수자에 대한 편견 등이다.

나아가 박 작가는 단편들이 쓰인 시기에 덮친 코로나19 팬데믹과 부동산 가격 폭등 문제까지 투시했다.

이태원에서 이자카야를 운영하던 임철우는 그 지역이 감염의 진원지로 낙인찍히자 혐오의 시선과 자금난에 결국 폐업을 결정한다.

안정적인 동거를 원하는 김남준과 고찬호는 편법까지 동원해 아파트를 계약한다.

박 작가는 이 작품들을 위해 "예방의학과 전문의에게 문의하고 네이처지도 찾아보고 백신 음모론과 효용론도 살펴봤다.

부동산 정책도 흐름을 공부하며 썼다"고 했다.

박상영 작가 "밥벌이하며 견디는 삶, 믿음 깨져도 살아지죠"
그러나 소설 속 서사가 심각하게 진지하거나, 억지스럽지 않다.

2019년까지 직장 생활을 한 박 작가 특유의 리얼리티와 위트가 '웃프게' 서려 있다.

직장 동료인 유한영은 고찬호에게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며 "성격은 운명"이라 잔소리를 한다.

첫 직장에서 "요즘 애들"이란 핀잔을 듣던 황은채는 어느덧 팀장 자리에 올라 자신도 모르게 같은 말을 내뱉는다.

임철우의 폐업 파티에 온 친구들은 "니가 앉은 자리마다 모두 폐허"라고 웃는다.

이들 청춘의 초상을 가로지르는 건 사람과의 관계, 희망적인 미래 등 삶에 대한 믿음의 파열음이다.

박 작가는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완벽히 깨진 것, 그것이 젊은층의 시대 정신"이라고 짚었다.

"다 쓰고서 '어떤 삶을 믿고 있니?'라고 스스로 물었는데 답이 없었죠. 하지만 고난과 배신, 믿음이 깨진 순간에도 삶은 살아지죠. '거짓이라도 희망에 믿음을 걸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힘이 나지 않겠지만 다시 한번 연약한 믿음이라도 싹틔워보자'란 생각을 했죠."
박 작가는 개인의 감정에 천착한 전작들과 달리 사회적인 맥락의 현상을 두고 집필한 '믿음에 대하여'가 시즌2를 여는 작품이라고 했다.

"사회학적인 시선으로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좋아하는 소설도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이나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이거든요.

판타지가 가미된 소설도 구상하고 있고요.

지금껏 동시대에 발붙인 이야기라면 이젠 보폭을 넓히고 싶어요.

"
그는 "등단할 때만 해도 시장이 새로운 작가를 찾던 시절인데, 지금은 새로운 작가들이 시장을 만들어나가는 시기인 것 같다"며 "적극적으로 시장을 만들어나가는 작가가 되려 한다"고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