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캐비닛 서류'에 갇힌 공무원들
‘범죄도시2’를 보러 서울 반포의 한 극장을 찾은 5월 어느 날, ‘다시는 코로나 이전 삶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한 주를 마감하던 금요일 저녁, 거기선 직원들의 모습을 찾기 힘들었다.

손님들은 자연스럽게 무인 키오스크에서 예약한 티켓을 찾고, 팝콘을 주문했다. 검표 없이 입장한 상영관엔 팝콘 부스러기가 널브러져 있었다. 더 놀라웠던 건 누구 하나 이런 모습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듯했다는 점이다. 극장 직원이 지금보다 두 배가량 많았던(CJ CGV 2019년 1분기 말 6255명→지난 1분기 말 3216명)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긴 어려울 듯했다.

코로나가 야기한 천지개벽

요즘 아이들은 ‘똑같이 생긴 쌍둥이’를 신기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체외수정 시술 증가로 이란성 쌍둥이가 일란성보다 3.3배나 많아져(2018년 기준) ‘쌍둥이는 다르게 생긴 게 정상’이라고 인식한다는 얘기다. 이란성이 일란성의 45%에 머물렀던 1990년대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살아갈 아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극장, 커피숍, 편의점 같은 곳에 키오스크나 로봇 대신 직원이 있으면 낯설게 여기는 세상이 곧 올지 모른다.

그 파장이 고용, 산업 그리고 사회 전반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그런데도 요즘 같은 변화무쌍한 시대를 두 걸음 뒤에서 바짝 쫓기는커녕 한참 뒤처져 구태를 답습하는 공무원들을 보고 있자면, 좌절하게 된다.

정부가 인플레이션 대책을 내놓기에 앞서 식품사들의 의견을 청취하던 지난 6월, 업계 사람들은 냉소했다. “좀 이따 보십시오. 기업인들 불러 공개 석상에서 ‘정부에 협조해달라’고 할 겁니다. 그러고 나면 유통업체들이 나서 대대적 할인 행사를 할 거예요. 그래도 안 된다? 회의 석상에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공무원들이 동석하겠지요.”

‘친기업을 자처하는 정부가 설마 그러겠어’란 생각은 보기 좋게 틀렸다.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유통, 육가공, 커피 업체 관계자 등을 연일 호출했다. 대형마트들은 ‘할인 전쟁’ 중이다. 예상된 궤적 그대로다. 그렇다면 다음은 공정위와 국세청 차례인가.

세상 변화 못 좇아가

“기회는 위기의 얼굴로 찾아온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코로나19는 교육, 노사관계 등 사회 전반의 폐단을 한 번에 쓸어버리고, 새 시대를 향해 남보다 앞서 뛸 절호의 기회였다. “미증유의 위기이니 더 이상 미룰 수 없습니다” 하고 강행하면 ‘기득권 세력’이 버티기 쉽지 않다. 김대중 정부의 외환위기 극복이 이런 식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달랐다. 위기를 면피하는 데 급급했다.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나 몰라라’ 했다.

그러지 않기를 바랐던 지금 정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수십 년 만에 찾아온 인플레 극복 수단이라는 게 할당관세 적용, 개별소비세·유류세 인하 같은 ‘헌 칼’뿐이다. 코로나로 더 악화한 농어촌 인력난, 꼬일 대로 꼬인 농·수·축산물 유통구조, ‘국민 건강’이란 명분 아래 꽉 막힌 수입처 같은 문제는 손도 대지 못하고(않고) 있다.

15년 전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출입 시절, “대책을 내놔야 하면 캐비닛부터 열어본다. 옛 서류에 답이 다 있다”던 공무원들 얘기에 ‘그럴싸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던 적이 있다. 미숙한 시절이었다. 지금 그런 공무원을 다시 만나면 “그 서류 당장 찢어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라”고 쏘아붙이고 싶다. 국민은 그렇게 요구할 권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