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 안철수 의원 등 여권의 주요 정치인이 복지 관련 이슈 선점에 나서고 있다. ‘보수=성장’, ‘진보=분배’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외연을 확대하기 위해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과거 ‘뉴라이트’와 같이 뚜렷한 사상적 주류 세력이 없는 가운데 복지 이슈를 중심으로 주도권을 선점하겠다는 포석도 깔려 있다. 관련 논의 진전에 따라 국민의힘의 정체성은 물론 다음 총선과 대선도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복지 앞세워 외연 넓히는 여권

"복지이슈 선점하자" 외연 확장 나선 여권 주자들
복지 강화와 관련해 가장 두드러진 정책 행보를 보이는 인사는 오세훈 서울시장이다. ‘약자와의 동행’을 시정철학으로 내걸고 ‘안심소득’ 지급과 임대주택 고급화 등 복지정책 확대에 역량을 쏟고 있다. 중위소득 100% 이하 가구를 대상으로 중위소득 대비 부족한 소득의 절반을 서울시가 지원한다는 것이 골자다. 소득 및 자산에 관계없이 정액을 지급하는 기본소득보다 시행 중인 근로장려세제와 비슷하다. 임대주택과 관련해서는 품질을 높이고, 임대주택과 분양주택이 구분되지 않도록 하는 ‘소셜믹스’를 추진하는 등 혁신 방안도 공개했다.

정치권 재편 과정에서 국민의힘에 새로 편입된 세력을 중심으로 복지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의 전신)과 국민의당을 거쳐 국민의힘 당권주자가 된 안철수 의원이 대표적이다. 그는 최근 한국경제신문 인터뷰에서 국민의힘의 가장 큰 단점으로 ‘기득권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들며 “사회적 약자, 소외된 이들을 품는 정당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제 발전의 3대 키워드는 자유·공정·사회적 안전망”이라며 “사회적 안전망이 있어야 한 번 실패해도 다시 성공할 수 있는 발판을 가질 수 있고, 그게 실리콘밸리의 정신”이라고 했다.

이 같은 주장은 당내에서 폭넓은 공감을 얻고 있다. 성일종 정책위원회 의장은 기자와 만나 “약자를 품지 못하는 보수는 진짜 보수라 부를 수 없다”며 “오 시장 등의 슬로건과 정책은 당 지도부의 인식과 일치한다”고 말했다. ‘반시장적’이라는 비판 속에서도 기름값과 대출 부담 완화를 목표로 기업 및 은행을 압박하고, 중소기업의 원가 비용을 대기업에 전가하는 납품단가연동제 도입을 추진하는 배경이다.

보수의 약점 보완한다지만…

이 같은 움직임은 중도층을 공략하는 데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할 전망이다. 야권의 정책통으로 꼽히는 최병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부소장은 “보수의 중도 확장을 위해 필요한 키워드는 민주주의·노동·복지 세 가지로, 이 지점에서 약점을 보완하면서 상대 진영으로 쳐들어가는 전술이 필요하다”며 “특히 오 시장의 안심소득 실험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다만 성장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 보수의 기존 가치와 상충하는 점도 있는 만큼 ‘쏠림’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보수가 내세우는 복지는 자립을 위한 마중물로, 무작정 퍼주는 진보의 복지와 다르다고 생각한다”며 “최근 당내 주요 인사들이 말하는 복지가 이 같은 철학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 의심스러운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