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130만명 이용 공항서 해열제 못 구해 '발 동동' 사라질까 [입법 레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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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공항 약 판매' 약사법 발의
‘24시 편의점’만 상비약 판매 가능
운영시간 제한 공항·항만에선 불가
'공항 약 판매' 약사법 발의
‘24시 편의점’만 상비약 판매 가능
운영시간 제한 공항·항만에선 불가
“연간 130만명이 이용하는 중부권 최대 공항인데 해열제나 소화제조차 공항 내에서 구할 수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30대 직장인 A씨는 최근 청주국제공항에서 제주행 항공편을 이용하던 중 아찔한 경험을 했다. 청주공항에 도착해 체크인을 끝낸 직후 어린 딸아이 체온이 급격히 오른 것을 확인한 것이다.
놀란 A씨는 즉시 공항 내 약국이 있는지 살펴봤다. 하지만 청주공항에는 운영 중인 약국이 없었다. 공항 내 편의점에서도 시내에 있는 다른 점포들과 달리 상비약을 구비하고 있지 않았다.
결국 A씨는 주차장으로 돌아가 차를 타고 공항에서 10여분 거리(3.2km)에 있는 약국에 가서야 해열제를 구할 수 있었다.
이들 공항에서 상비약을 구할 수 없는 건 공항이 약사법상 ‘안전상비의약품 제도’의 적용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2012년 11월 시행된 안전상비의약품 제도는 편의점에서 해열제와 소화제, 진통·소염제 등 상비약 판매를 허용했다. 약국이 운영되지 않는 심야나 공휴일에도 약을 쉽게 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약사법 제44조 1항은 약사 또는 한약사가 아닌 자의 의약품 판매를 금지한다. 다만 2항에서는 안전상비의약품 판매자에 한해 허용했다. 안전상비의약품 판매자로 등록하려면 ‘24시간 연중 무휴 점포’ 등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등록기준을 갖춰야 한다.
그런데 국내 공항의 경우는 심야까지 항공편이 있는 인천이나 이용객 수가 많은 김포, 김해, 제주 등을 제외하고는 24시간 연중 무휴 요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편의점을 찾아보기 힘들다. 인천을 제외한 나머지 공항의 경우 야간 항공기 운행제한(커퓨)이 있어 늦은밤부터 새벽까지는 사실상 문을 닫기 때문이다.
정 의원은 “상당수 국내 공항이나 여러 항만의 여객시설 등에 연중 무휴 등 안전상비의약품 판매자 기준을 충족하는 점포가 없어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다”며 “의료치약지역 문제 및 국민 불편 해소를 위해서 상비약 판매를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국토부에 따르면 청주공항의 경우 지난해 130만4991명이 다녀가 국내선 기준 제주(1277만명)와 김포(1116만명), 김해(442만명) 다음으로 이용객이 많았다. 대구(104만명)와 광주(100만명) 공항도 작년 이용객이 100만명을 넘었지만 역시 상비약 판매처가 없었다.
이들 공항에서는 가까운 약국에서 약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 정 의원실에 따르면 양양공항의 경우 가장 가까운 약국과 거리가 4.1km에 달했다. 여수(3.7km), 청주·무안(3.2km), 군산·원주(2.9km) 공항 등도 가까운 약국까지 차량으로 10분 이상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주공항의 경우는 약국이 들어설 충분한 공간이 있지만 2019년부터 4년째 임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한국공항공사는 약국 운영자를 찾기 위해 월 임대료를 최저 수준인 80만원까지 낮췄지만 번번이 낙찰에 실패했다. 약사들이 병원에서 처방하는 조제약 없이 일반약 판매만으로는 충분한 수익을 내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복지부 역시 “단순히 특정 시설 내 안전상비의약품 판매자가 없다는 이유 만으로 연중 무휴 점포가 아닌 곳에서 판매를 허용하면 심야 및 공휴일의 의약품 접근성 확보라는 제도 취지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며 약사회 손을 들어줬다.
이에 대해 정 의원실 관계자는 “항공기에서 필요하면 상비약을 요청할 수 있다는데 일반적으로는 항공기 탑승 전에 미리 멀미약이나 소화제를 복용하지 않느냐”면서 “리조트나 고속도로 휴게소 등의 경우는 복지부 고시에 의해 특수장소로 지정돼 이미 예외적으로 상비약 판매가 허용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향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법안을 논의할 때 복지부나 약사회 뿐 아니라 시설 운영주체인 국토부와 공항공사 의견도 들어보면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
30대 직장인 A씨는 최근 청주국제공항에서 제주행 항공편을 이용하던 중 아찔한 경험을 했다. 청주공항에 도착해 체크인을 끝낸 직후 어린 딸아이 체온이 급격히 오른 것을 확인한 것이다.
놀란 A씨는 즉시 공항 내 약국이 있는지 살펴봤다. 하지만 청주공항에는 운영 중인 약국이 없었다. 공항 내 편의점에서도 시내에 있는 다른 점포들과 달리 상비약을 구비하고 있지 않았다.
결국 A씨는 주차장으로 돌아가 차를 타고 공항에서 10여분 거리(3.2km)에 있는 약국에 가서야 해열제를 구할 수 있었다.
청주 등 11개 공항서 상비약 못 구해
해열제와 소화제 등 기본적인 상비약조차 구하기 힘든 공항은 청주공항 말고도 여럿 있다. 한국공항공사 등에 따르면 전국 14개 공항 중 인천과 김포, 김해, 제주 등을 제외한 나머지 11개 공항에서 상비약 구매가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이들 공항에서 상비약을 구할 수 없는 건 공항이 약사법상 ‘안전상비의약품 제도’의 적용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2012년 11월 시행된 안전상비의약품 제도는 편의점에서 해열제와 소화제, 진통·소염제 등 상비약 판매를 허용했다. 약국이 운영되지 않는 심야나 공휴일에도 약을 쉽게 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약사법 제44조 1항은 약사 또는 한약사가 아닌 자의 의약품 판매를 금지한다. 다만 2항에서는 안전상비의약품 판매자에 한해 허용했다. 안전상비의약품 판매자로 등록하려면 ‘24시간 연중 무휴 점포’ 등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등록기준을 갖춰야 한다.
그런데 국내 공항의 경우는 심야까지 항공편이 있는 인천이나 이용객 수가 많은 김포, 김해, 제주 등을 제외하고는 24시간 연중 무휴 요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편의점을 찾아보기 힘들다. 인천을 제외한 나머지 공항의 경우 야간 항공기 운행제한(커퓨)이 있어 늦은밤부터 새벽까지는 사실상 문을 닫기 때문이다.
약사들은 수익성 이유로 약국 개설 기피
정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3월 대표 발의한 약사법 개정안은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고안됐다. 정 의원은 국토교통부 항공정책실장과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등을 역임한 항공교통 전문가다. 정 의원안은 공항과 항만에 입점한 편의점에 대해선 24시간 연중 무휴 등 상비약 판매자 등록요건을 완화할 수 있도록 했다.정 의원은 “상당수 국내 공항이나 여러 항만의 여객시설 등에 연중 무휴 등 안전상비의약품 판매자 기준을 충족하는 점포가 없어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다”며 “의료치약지역 문제 및 국민 불편 해소를 위해서 상비약 판매를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국토부에 따르면 청주공항의 경우 지난해 130만4991명이 다녀가 국내선 기준 제주(1277만명)와 김포(1116만명), 김해(442만명) 다음으로 이용객이 많았다. 대구(104만명)와 광주(100만명) 공항도 작년 이용객이 100만명을 넘었지만 역시 상비약 판매처가 없었다.
이들 공항에서는 가까운 약국에서 약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 정 의원실에 따르면 양양공항의 경우 가장 가까운 약국과 거리가 4.1km에 달했다. 여수(3.7km), 청주·무안(3.2km), 군산·원주(2.9km) 공항 등도 가까운 약국까지 차량으로 10분 이상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주공항의 경우는 약국이 들어설 충분한 공간이 있지만 2019년부터 4년째 임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한국공항공사는 약국 운영자를 찾기 위해 월 임대료를 최저 수준인 80만원까지 낮췄지만 번번이 낙찰에 실패했다. 약사들이 병원에서 처방하는 조제약 없이 일반약 판매만으로는 충분한 수익을 내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리조트는 되고 공항은 안 된다?
대한약사회는 공항에 상비약 판매자 등록기준 완화를 허용하면 안 된다며 반대 입장이다. 약사회는 지난 5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보낸 의견서에서 “보건복지부 고시에 의거해 항공기와 선박 등에선 이용자에 의약품 구매 편의가 제공되고 있다”며 “공항 및 항만 시설에 별도로 안전상비의약품 등록 기준을 완화하는 것은 제도 도입 취지에 반한다”고 주장했다.복지부 역시 “단순히 특정 시설 내 안전상비의약품 판매자가 없다는 이유 만으로 연중 무휴 점포가 아닌 곳에서 판매를 허용하면 심야 및 공휴일의 의약품 접근성 확보라는 제도 취지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며 약사회 손을 들어줬다.
이에 대해 정 의원실 관계자는 “항공기에서 필요하면 상비약을 요청할 수 있다는데 일반적으로는 항공기 탑승 전에 미리 멀미약이나 소화제를 복용하지 않느냐”면서 “리조트나 고속도로 휴게소 등의 경우는 복지부 고시에 의해 특수장소로 지정돼 이미 예외적으로 상비약 판매가 허용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향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법안을 논의할 때 복지부나 약사회 뿐 아니라 시설 운영주체인 국토부와 공항공사 의견도 들어보면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