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럽연합(EU) 법원이 EU 경쟁당국의 심사권을 대폭 확장한 판결을 내놨다. 유럽 매출이 0인 미국 기업에 대한 반독점 심사권을 인정한 것이다.

23일(현지시간) 외신들에 따르면 EU 고등법원에 해당하는 일반법원은 이달 중순 "EU 집행위원회의 경쟁분과위원회가 미국 바이오테크 기업들의 인수합병(M&A) 건에 대해 심사할 권한이 있다"고 판결했다. EU 경쟁당국은 미국 유전자 분석 기업 일루미나가 다중 암 조기 진단 회사 그레일을 80억달러(약 9조원)에 인수하는 거래에 대한 반독점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문제는 그레일이 유럽시장에서 발생시키는 매출이 없어 EU 회원국들의 정밀 조사가 요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은 "이번 법원 판단은 유럽 경쟁사에 피해를 줄 수 있는 기술기업, 생명과학 기업 등의 거래에 대한 EU 경쟁당국의 심사 범위를 넓힌 것"이라며 "인수합병을 추진하려는 글로벌 기업들에는 불확실성을 가중시킬 것이란 점에서 중요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U 법원은 판결에서 "EU 경쟁당국은 유럽 차원이 아니거나 EU 회원국 또는 유럽 경제 지역 협정 당사국의 M&A 통제 규칙 범위에 속하지 않는 시장집중도를 조사할 권한이 있다"고 판시했다. 기존의 M&A 승인심사 규정에 따르면 EU 경쟁당국은 피인수기업이 EU에 상업적 입지를 갖고 있고 매출 기준을 충족하는 경우에만 관할권을 갖게 돼 있다. 일루미나 측은 "지난해 8월 완료된 이 거래를 통해 암 질병 치료 관련 투자를 확대할 수 있다"며 항소 계획을 밝혔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