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비 2600억원 쏟아부어
라인업·액션신 최강이지만
빈약한 스토리가 몰입 방해
지난 22일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그레이 맨(Gray Man·사진)’이 딱 그렇다. 넷플릭스는 이 영화를 띄우기 위해 돈을 쏟아부었다. 제작비로 2억달러(약 2600억원)를 투입했다. 넷플릭스가 자체 제작한 오리지널 영화 중 가장 많다. 한국 대작 영화의 4~10배에 이른다.
넘쳐나는 돈 덕분에 창작진과 출연진 모두 최강으로 꾸렸다. 연출은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와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만든 루소(앤서니 루소, 조 루소) 형제가 맡았다. ‘라라랜드’로 큰 사랑을 받은 라이언 고슬링, ‘캡틴 아메리카’ 크리스 에번스, ‘브리저튼’의 레지 장 페이지, ‘007 노 타임 투 다이’의 아나 디 아르마스 등이 출연한다. 넷플릭스의 대대적 홍보에 힘입어 공개 직후 넷플릭스 영화 부문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영화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범죄자 중 특출난 이를 선별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비밀 암살 임무를 맡기는 ‘그레이 맨’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고슬링은 그레이 맨 중 ‘식스’로 불리는 인물을 연기한다. 식스는 많은 그레이 맨 중에서도 뛰어난 실력으로 끝까지 살아남는다. 중요한 단서까지 손에 넣어 CIA의 표적이 된다. 사이코패스 성향을 가진 악역 로이드(에번스 분)는 CIA로부터 그를 제거하라는 주문을 받고 식스와 대적한다.
주요 인물들은 미국, 프랑스, 체코, 태국, 크로아티아, 오스트리아 등 전 세계를 넘나든다. 영화는 초반부터 잦은 장면 전환으로 이 점을 대대적으로 부각한다. 이들 도시에서 화려한 액션신을 펼친다. 이 중 헬기에서의 액션신과 프라하 공원에서의 액션신은 압도적이다. 고슬링과 에번스의 연기 대결도 흥미진진하다. 특히 악역으로 변신한 에번스는 영웅 ‘캡틴 아메리카’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하지만 화려한 액션으로도 느슨하고 허술한 스토리를 감추지는 못한다. 설득력이 떨어지는 상황 설정도 있다. 식스가 들고 사라진 단서가 그렇다. 식스와 식스가 지키려는 아픈 소녀와의 관계는 진부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액션신에 쓸 돈을 조금 덜어내 스토리를 다듬는 데 썼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넷플릭스에서 ‘가장 돈을 많이 쓴 영화’이자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은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