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건영·김유홍·정민채·최득호·엄기용 대표(왼쪽부터)가 각자 출간한 자신들의 저서를 소개하고 있다.
박건영·김유홍·정민채·최득호·엄기용 대표(왼쪽부터)가 각자 출간한 자신들의 저서를 소개하고 있다.
‘CEO들에게 독서는 창의력과 통찰력을 길러주고, 타인의 생각을 읽고 맥락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비즈니스뿐만 아니라 매일 먹는 식사, 만나는 사람, 옷차림 등 하루 한 가지씩 일상에 변화를 준다.’

지난해 말 출간된 《CEO의 인생서재》의 머리말에 나오는 문구다. 이 책의 저자는 기업인들이다. 인쇄회로기판(PCB) 모듈 제조사 브레인EMS를 운영하는 김유홍 대표를 비롯해 조경 및 골프장 건설업체 대목환경건설의 최득호 대표, 국제물류운송회사 혜미항공해운의 엄기용 대표, PCB 설계업체 피디씨(PDC)의 박건영 대표, 정민채 대표(부동산투자사) 등이다. 이노비즈협회(중소기업기술혁신협회) 내 독서토론회의 핵심 멤버들로 연 매출 50억~200억원 규모의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2014년 처음 시작한 독서토론회는 매달 한 번씩, 지금까지 80여 차례 이어진 장수 모임이다. 일리아드·오디세이 등 고전부터 경제, 역사 분야 등 다양한 장르의 책을 섭렵했다. 음악 감상에 심취하면 직접 악기를 다루고 싶은 법. 《CEO의 인생서재》로 인생 첫 글쓰기에 맛을 들인 이들은 최근 각자의 책을 따로 펴냈다. 작가라는 ‘부캐’로 제2의 삶을 꾸려가는 이들을 25일 청계산 자락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독서토론회 회장인 김 대표는 “술과 골프를 줄이고 싶은 마음에 독서 모임을 제안했다”며 “책을 읽을수록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생겨 집필에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독서모임을 운영하면서 느낀 소회를 담은 《살면서 한번은 모임의 리더가 되어라》를 출간했다. 김 대표는 40여 차례 진행된 역사 아카데미도 이끌고 있다.

최 대표가 세상에 내놓은 책은 《인생은 오늘도 나무를 닮아간다》. 조경업 20년의 내공을 담아 나무 30종의 속성에 빗댄 삶의 지혜를 차곡차곡 엮었다. 최 대표는 연작으로 다섯 권을 더 펴낼 계획이다. 그는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를 실천하는 기업인이기도 하다. 고향 경북 김천에 1만여 권의 장서를 보관하는 서고(書庫)를 따로 만들 정도로 독서광이다.

사진작가로도 활동 중인 엄 대표는 《집으로 가는 길》이라는 자전적 포토에세이를 썼다. “인생을 정리하는 의미로 유년 시절 기억까지 끄집어낸 집필 과정을 통해 한결 겸손해졌다”고 그는 강조했다. 박 대표가 출간한 《사업회로도》는 정보기술(IT) 분야의 예비 창업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길잡이다. 책에서 그는 “남과 달리 진보적으로 선택하고, 죽을 힘을 다해 사업하라”고 조언한다. 정 대표는 실질적인 투자 노하우를 담은 《부동산 투자》를 펴냈다.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는 뜻의 ‘수불석권(手不釋卷)’을 실천하는 이들에게 독서와 글쓰기는 경영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김 대표는 “과거엔 거래처 관계자를 만나 회사와 제품을 소개하기에 급급했는데, 요즘엔 경청하는 습관이 생기고 미래를 판단하는 안목이 한결 트인 것 같다”며 “코로나 사태를 무사히 넘긴 것도 경제서적에서 인사이트를 얻어 사업 포트폴리오를 바꾼 덕”이라고 말했다. 최 대표는 “직원들과도 독서모임을 하고 있는데, 훨씬 단합이 잘되는 것 같다”고 했다. 박 대표는 “공고 출신이라 보고서 외엔 써본 적이 없었지만 글쓰기와 독서를 통해 단조롭던 사고가 확장되고 표현력도 좋아져 스스로 가치가 한 단계 올라가고 있음을 느낀다”고 강조했다.

이정선 기자 leeway@hankyung.com